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를 상대로 설문 조사에 나선 것은 코로나19가 아동의 학력 저하뿐 아니라 건강과 사회성 형성 등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학부모들은 코로나19가 아이들의 미래 소득이나 대학 진학, 사회적·경제적 계층 이동까지 삶 전반을 뒤흔들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저출산·고령화로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갈수록 떨어질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미래 인재 확보를 위해서라도 대응책 마련과 함께 정책적 지원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성민 KDI 연구위원은 18일 한국응용경제학회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코로나19가 저학년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학업 수준 및 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된다”며 “아동기 건강과 사회적 형성이 성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적절한 대응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부모들은 코로나19가 없었다고 가정했을 때보다 아이들의 TV 시청 기간이 76.4%, 온라인 기기 사용 시간이 79.7% 늘어난 것으로 파악했다. 특히 고학년일수록 온라인 기기 사용 시간이 늘어났는데 비대면 수업이 많기도 하지만 스마트폰 중독 문제가 반영된 결과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운동 시간(-44.5%)과 친구랑 노는 시간(-63.0%)은 전 학년에 걸쳐 크게 줄었다. 자기 주도 학습 시간(12.9%)과 학부모와 함께 공부하는 시간(28.6%)이 늘기는 했지만 정식 교육과정이 아닌 만큼 제대로 된 학습이 이뤄졌을 가능성은 낮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사회성 발달에도 부정적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학부모 10명 중 8명은 코로나19가 자녀의 사회성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봤다. 학습 태도(72.6%), 건강(71.6%), 미래 소득(59.8%), 향후 대학 진학(59.0%), 사회적·경제적 계층 이동(58.8%) 등 자녀의 삶 전반에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하는 부모가 많았다.
문제는 저소득층일수록 코로나19에 따른 악영향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코로나19로 인한 학력 저하 영향이 적게 나타났다. 부유할수록 학업 지원의 질이 달랐다는 의미다. 저소득층의 경우 소득 감소로 자녀 교육비를 줄였을 가능성도 있다. 지난해 경기도교육연구원이 조사한 결과에서도 가정환경이 열악할수록 원격 수업 집중도가 떨어지는 등 가정의 경제적 수준이 비대면 수업 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관찰됐다.
코로나19 사태 초반부터 아이들의 학력 저하 우려가 제기됐지만 정부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중산층 이상은 나름대로 자구책을 찾았지만 저소득층 자녀는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을 크게 받은 상황”이라며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은 2020년 중반부터 해결책을 찾았는데 우리나라는 대응 시기를 놓쳤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기초학력 보장을 위한 복합 진단과 함께 지원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고영훈 교육부 교육기회보장과장은 “학급 내 1수업 2교사제와 특수·상담 선생님 등 다중 지원팀, 학습종합클리닉센터 등 기초학력 3단계 안전망을 구축하고 있다”며 “올해 하반기에 보다 정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종합적이고 근본적인 방안을 담은 기초학력 보장 종합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