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이하 현지 시간) 2011년 4월 이후 11년 만에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는 유럽중앙은행(ECB)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인상하는 ‘빅스텝’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다음 주 0.75%포인트의 ‘자이언트스텝’을 2개월 연속 이어갈 것이 유력해진 상황에서 유럽도 치솟는 인플레이션과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공세적 긴축에 발맞춰 금리 인상 ‘보폭’을 키울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반면 물가 상승률이 2%로 상대적으로 낮은 일본은 같은 날 금융정책결정책회의에서 ‘마이너스 금리’를 고수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2분기 경제성장률이 0%대로 추락한 중국 역시 사실상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완화 행보를 이어가는 등 이달 말까지 글로벌 ‘빅4’ 중앙은행들의 통화정책이 극명하게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기록적 물가, 유로화 하락에 ECB 기류 바뀌었나
현재 시장의 관심은 ECB의 금리 인상 보폭에 온통 쏠려 있다. 19일 로이터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ECB가 지난달 0.25%포인트 인상을 예고했으나 현재는 0.5%포인트도 선택지 안에 포함된 상태라고 보도했다.
유력한 인상 폭은 여전히 0.25%포인트로, 로이터가 63명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 62명이 0.25%포인트의 ‘베이비스텝’을 예상했다. 그러나 6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사상 최고인 8.6%까지 치솟으면서 내부 기류가 바뀌기 시작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도 지난달 연례총회에서 “(고물가 대응이) ‘점진적인’ 수준에서 더 단호해질 것을 요구받고 있다”며 빅스텝 가능성을 내비쳤다.
연준이 올 들어 금리를 총 1.5%포인트 올린 사이 ECB는 마이너스 금리(-0.5%)를 유지한 탓에 유로화 가치가 추락한 것도 ECB의 고민을 깊게 만들고 있다. 유로화는 14일 0.9991유로까지 떨어져 ‘패리티(1달러=1유로)’가 깨졌지만 ECB 빅스텝 가능성에 19일 1.0240유로로 반등했다. 시장에서 ECB의 급격한 금리 인상이 이탈리아 등 ‘고부채’ 국가들에 연쇄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파이낸셜타임스(FT)는 “ECB가 빅스텝 결정 시 유로존 국가의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함께 내놓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크리스토프 리거 코메르츠방크 금리전략본부장은 “ECB의 빅스텝 전망이 충분히 설득력 있다”고 분석했다.
ECB의 달라진 기류에 영국의 보폭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말부터 5회 연속 0.25%포인트씩 금리를 올려온 영란은행(BOE)의 앤드루 베일리 총재는 이날 “8월 0.5%포인트 인상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밝혔다.
9%대로 치솟은 물가 때문에 1%포인트 ‘울트라스텝’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미 연준의 7월 금리 인상 폭은 0.75%포인트로 수렴되는 분위기다. 연준의 금리 인상 규모를 전망하는 페드워치에 따르면 0.75%포인트 인상 확률은 이날 현재 66.8%로 1%포인트(33.2%)보다 2배 높다. 주요 지표들이 경기 침체를 가리키면서 연준이 더 이상의 속도를 내기는 부담스러워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6월 주택 착공 건수는 전월보다 2% 감소해 지난해 9월 이후 가장 낮아졌으며 6월 신규 주택 허가 건수도 전달보다 0.6% 줄었다. 미시간대가 집계하는 5년 기대 인플레이션율 7월 수치가 2.8%로 최근 1년래 가장 낮은 점도 연준이 무리하게 ‘울트라스텝’을 밟아야 할 필요성을 낮추고 있다.
경기 부양에 방점 찍은 日·中
반면 일본과 중국은 경기를 이유로 금리 동결을 고집하고 있다. 외신들은 일본은행이 21일 -0.1% 마이너스 금리를 고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일본 역시 유례없는 ‘강달러’에 엔화 가치가 달러당 140엔에 육박할 정도로 엔저(엔화 가치 하락)의 골이 깊지만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여전히 경기 부양에 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2000년대 ‘버블 경제’를 꺼뜨리기 위해 긴축에 나선 게 ‘잃어버린 10년’으로 이어진 경험이 여전히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일본 CPI가 2%대로 다른 국가들보다 한참 낮은 점도 금융 완화 고집을 꺾지 않는 이유다.
중국 역시 20일 기준금리 역할을 하는 대출우대금리(LPR)를 동결하며 긴축보다는 경기 부양에 방점을 찍었다. 중국은 2분기 성장률이 상하이 봉쇄 충격으로 0.4%까지 급락해 5.5%의 연간 성장 목표 달성이 어려워진 상태지만 통화정책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인 데다 미국의 긴축 기조를 거슬러 추가 완화에 나설 경우의 부작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지적에 금리를 그대로 묶었다는 분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