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수도가 서울이고 미국의 수도가 워싱턴 D.C.라면, 비공식적이지만 명실상부 세계의 수도가 뉴욕이라는 점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최대 도시이자, UN 본부가 위치해 정치 중심지기도 하고, 월스트리트를 통해 세계 금융과 경제를 지배하고 있기도 하다. 브로드웨이와 뉴욕근현대미술관(MoMA)은 세계 문화의 중심지로 자리잡았고, 뉴욕 패션 위크를 통해 세계 패션을 선도하고 있다. 타임스퀘어와 자유의 여신상이 상징인 세계적 관광지이기도 하다.
미디어는 우리와 뉴욕의 거리를 가깝게 만들었다. 장년층 이상은 누구나 프랭크 시나트라의 ‘뉴욕, 뉴욕’을 흥얼거리고, 젊은이들은 제이지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오브 마인드’를 흥얼거린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뉴욕은 단골 손님이다. 우리는 화려한 뉴욕의 거리와 스카이라인, ‘아메리칸 드림’과 화이트칼라에 익숙하다.
신간 ‘아무도 모르는 뉴욕’은 그런 스테레오타입을 깨 준다. 빛나는 뉴욕의 모습 뿐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바닥의 삶부터 차근차근 살펴본다. 2차 세계대전 시기부터 2020년까지 뉴욕에서 살아온 사회학자인 저자는 뉴욕의 여러 층위를, 집단 속에 들어가서 그들의 일상을 직접 체험하고 연구하는 민족지학적 방법론을 통해 분석한다.
‘멜팅 팟’의 상징으로 알려진 뉴욕답게, 뉴욕을 분석하기는 쉽지 않다. 통계는 물론 유용한 수단이지만, 숫자에 매몰되면 뉴욕의 피상적인 모습만 관찰하게 된다.
저자는 뉴욕을 기술하기 위해 익숙한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책을 쓰면서 그가 걸은 거리는 1만 ㎞에 이르고, 만난 사람은 수백 명에 달한다. 그는 할렘의 빈민가에서부터 맨해튼의 금융가를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다니며 노동자부터 CEO, 이슬람부터 기독교, 흑인부터 백인까지의 모든 층위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오랜 세월을 뉴욕에서 살아 온 저자는 그 세월 동안 쌓여 온 자신의 뉴욕에 대한 고정관념을 배제한 채 연구에 임한다. 이런 ‘낯설게 보기’를 통해 지구 반대편의 독자들도 뉴욕의 문화를 조금 더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뉴욕은 이민자들의 도시다. 아메리카 개척자들의 첫 정착지 중 하나였고, 대서양 항로 최대의 무역항이기도 했다. 지금까지도 뉴욕에는 세계 어느 도시보다 다양한 성격의 집단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각자의 구역과 자치구에 거주하면서도, ‘뉴요커’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여 있기도 하다. 저자는 이 두 가지 정체성 모두를 이해해야 뉴욕을 이해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뉴욕은 ‘뉴요커’라는 하나의 멜팅 팟이기도 하지만, 여러 개별 커뮤니티들이 각자의 정체성을 지켜 나가며 살아가는 ‘샐러드 보울’이기도 하다.
젠트리피케이션도 다룬다. 젊은 전문직 종사자들은 성공을 위해 뉴욕으로 이주한다. 이들은 빈곤층을 대체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빈곤층과의 충돌도 발생하고 있다. 젠트리파이어들의 이주는 주택 유입·편의시설 확충·주거지역 안전화 등의 장점도 있지만, 빈곤한 기존 거주민들은 쫓겨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도 새로운 관계는 형성되고, 정체되어 있던 지역에 활기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질적인 집단들 사이의 융화는 점점 가속화된다. 저자는 “세대가 지나며 민족·종교적 정체성은 개인의 선택이 되어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뉴욕은 그 경향 속에서 어느 때보다 자유를 중시하는 풍조가 강화되고 있고, 타 집단에 대한 편견도 줄어들며 다양성 존중의 기반도 확립 중이다.
4년 동안 진행된 연구의 결과는 명확하다. 저자는 결론에서 “뉴욕은 여러 수준에 맞춰 수많은 것을 제공하여 앞으로도 오랫동안 세계 최고의 도시 중 하나로 남을 것이다”라고 천명한다.
다만 이 책이 2013년에 쓰여졌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는 있다. 트럼프 집권 시기의 이민자 배척 정책과 갈등, BLM(흑인의 삶은 소중하다) 운동 등 인종 분쟁, 팬데믹으로 인한 사회 변화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요소들은 책에 반영되지 못했다. 예상치 못했던 신냉전이 찾아온 지금, 뉴욕이 세계 수도의 지위를 지킬 수 있을 지 지켜 볼 일이다. 3만 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