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통일·외교·안보

[로터리]이 땅에 평화를 가져오는 힘

김영식 전 제1야전군사령관 (예비역 대장)

김영식 예비역 육군 대장. 사진제공=육군김영식 예비역 육군 대장. 사진제공=육군




모레가 한반도에서 열전(熱戰)으로서의 전쟁을 잠시 멈추게 한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9년째 되는 날이다. 지금 우리가 겪는 아픔의 대부분은 북한이 저지른 6.25 전쟁에서 시작되어 대물림되어 오고 있다. 세계 최빈국의 위치에서 맞이한 전쟁은 갓 태어난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협했다. 많은 사람들이 잘 기억하고 있지 못하지만 일본에 주둔하던 중 북한의 전투력을 우습게 여기고 전쟁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허겁지겁 한반도 전쟁에 뛰어든 미군은 죽미령 전투에서 호되게 당하고 난 후 낙동강까지 속절없이 밀려났다. 그 바람에 미국은 한반도를 포기하고 망명정부를 어디에 세울 것인지까지 검토하는 지경에 이르렀었으니 당시 국가의 명운이 어떠했는지를 상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그런 위중한 상황 속에서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유엔이 전쟁 발발 24시간도 채 안 되어서 북한의 남침을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그와 동시에 즉각 공격을 중단하고 철수할 것을 촉구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82호를 채택했다. 이어서 6월 27일에는 국제사회에게 대한민국에 대한 원조를 권고(결의안 83호)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활동에 들어갔다. 결정적으로는 7월 7일 미국 지휘 하에 통합사령부를 창설하여 역사상 최초의 유엔군 사령부로 명명하고 유엔기(旗)를 사용할 권한을 승인(결의안 84호)했다. 이로써 본격적으로 자유 진영이 대오를 형성하여 공산 진영과 맞서 싸우는 체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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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1개월 2일 동안의 전쟁에서 한국군 13만 7899명이 전사 또는 사망했다. 유엔군은 미군 전사자 3만 6940명을 포함하여 4만 670명의 소중한 목숨을 이 땅에 바쳤다. 부상자와 실종자까지 합산하면 유엔군의 인명 피해는 15만 명에 이른다. 우리가 백척간두의 국란을 극복하고 이제 세계 속의 신흥 강국으로 부상하게 된 데에는 이렇듯 자유의 가치를 공유한 국가들의 ‘피와 땀’이 함께 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정전협정이 발효되는 날 유엔에 병력을 제공한 국가들은 만약 북한이 또다시 오판하여 전쟁을 재발한다면 자동적으로 참전하겠다는 선언을 함으로써 한반도 전쟁 억제에 기여하고 있다. 이들 국가 중 일부는 매년 두 차례 실시하는 한미 연합연습에 참가하여 함께 연습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고무적이다.

정전(停戰)은 말 그대로 교전을 잠시 멈추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이해 당사자 간에 맺은 협정이 얼마나 허망하게 파기되었는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군사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 정치적 수사에 불과한 종전선언을 한다고 해서 한반도에 평화가 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바로 평화 착시 현상이다. “평화를 만드는 것은 평화적인 태도가 아니라 군사적 힘의 균형이다.”라고 갈파한 한스 모겐소의 말이 새삼 다가오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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