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단독]이건희 컬렉션이 위험하다…100년된 고서화 1년째 전시

보존엔 관심없는 국립현대미술관…작품관리 소홀

특별전에 또 나온 이상범의 1922년작 '무릉도원'

전문가 "최장 6개월 이상 전시하면 안 돼"

김종학 작품도 습기피해로 전시도중 철수

야외 90억원대 쿠사마 '호박' 등 곳곳 훼손

‘이건희 컬렉션’ 중 하나로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청전 이상범의 1922년작 ‘무릉도원’이 지난해 7월부터 11개월간 서울관에서 전시된 데 이어 6월 1일부터 과천관에서 개막한 ‘생의 찬미’ 전시에 연달아 선보였다. 100년 된 고서화의 보존상 무리라는 지적이 따르고 있다. 과천=조상인 기자‘이건희 컬렉션’ 중 하나로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청전 이상범의 1922년작 ‘무릉도원’이 지난해 7월부터 11개월간 서울관에서 전시된 데 이어 6월 1일부터 과천관에서 개막한 ‘생의 찬미’ 전시에 연달아 선보였다. 100년 된 고서화의 보존상 무리라는 지적이 따르고 있다. 과천=조상인 기자




“11개월 전시한 것도 모자라 연달아 또 전시 중인데, 100년 된 작품에 탈이 나야 좀 쉬게 할지… 보존 문제에는 관심 없나 봅니다.” (전직 공립미술관장 A 씨)



‘이건희 컬렉션’ 중 대표 격인 청전 이상범(1897~1972)작 ‘무릉도원’의 과도한 장기 전시를 지적한 말이다. 서울경제가 20~21일 해당 작품이 전시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을 현장 취재한 결과 전시장 내부 및 야외 조각 전시장 곳곳에서 관리 허점이 확인됐다.

◇이건희 컬렉션 어쩌나=24일 미술계에 따르면 이상범의 1922년작 ‘무릉도원’은 지난해 7월 21일 개막해 올해 6월 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이건희컬렉션 특별전:한국미술명작’ 전시에도 나왔다. 이 미술관은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수집품을 삼성가(家)가 국가에 기증한 일명 ‘이건희 컬렉션’을 1448점 소장하고 있다.

‘이건희 컬렉션’ 중 하나로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청전 이상범의 1922년작 ‘무릉도원’이 지난해 7월부터 11개월간 서울관에서 전시된 데 이어 6월 1일부터 과천관에서 개막한 ‘생의 찬미’ 전시에 연달아 선보였다. 과천=조상인 기자‘이건희 컬렉션’ 중 하나로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청전 이상범의 1922년작 ‘무릉도원’이 지난해 7월부터 11개월간 서울관에서 전시된 데 이어 6월 1일부터 과천관에서 개막한 ‘생의 찬미’ 전시에 연달아 선보였다. 과천=조상인 기자



‘무릉도원’은 휴식 기간 없이 지난달 1일 과천관에서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으로 개막한 ‘생의 찬미’에 또 출품됐다. 폭 390㎝의 이 대작은 존재한다는 사실만 전할 뿐 공개 전시된 적 없다가 100년 만에 이건희 회장 기증품으로 처음 전시에 나왔다. 시민의 관심도 뜨거웠다. 작품 의의와 관심, 미술품 관리 원칙 등을 고려하면 작품 보존을 염두에 두고 전시 계획을 세워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무릉도원’ 장기 전시는 이런 의의와 원칙을 무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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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과 리움미술관을 운영하는 삼성문화재단 측 관계자는 “내부 기준으로 고서화의 경우 3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간 전시하고 전시 후에는 1년 이상 휴식기를 가진다”면서 “작품마다 상태가 제각각인데 서양화에 비해 종이나 비단에 그려진 전통 고서화는 온·습도에 더욱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고서화 복원 전문가이자 문화재 관련학과 교수인 B 씨는 “100년 된 비단그림이라면 3개월 정도 전시해야 한다. 최장 6개월 이상 해서는 안 된다”면서 “미국의 일부 미술관은 3개월 전시하면 5년간 재전시를 못하게 관리한다”고 지적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서울관 전시 이후 작품 상태 조사를 거쳐 문제없다고 판단해 전시했다”고 말했다

김종학의 2006년작 ‘현대모란도’가 장마철 습기로 인한 손상 우려가 제기돼 보존실로 옮겨가는 바람에 전시장 빈 벽 앞에는 작품 이미지가 담긴 A4 용지와 안내판이 놓여 있다. 과천=조상인 기자김종학의 2006년작 ‘현대모란도’가 장마철 습기로 인한 손상 우려가 제기돼 보존실로 옮겨가는 바람에 전시장 빈 벽 앞에는 작품 이미지가 담긴 A4 용지와 안내판이 놓여 있다. 과천=조상인 기자


더 큰 문제는 습도다. ‘무릉도원’과 함께 채색화 특별전에 출품된 원로화가 김종학의 ‘현대모란도’가 습기 피해로 전시 도중에 철수됐다. 김종학의 유사작 경매 낙찰가가 2억 5000만 원 이상인 고가 작품이다. 현장에는 휑한 빈 벽에 A4 용지에 출력한 작품 이미지만 붙었다. 미술관은 ‘작품 상태 점검 중’이라는 안내판을 뒀다. 미술관 측은 “최근 비가 많이 오면서 전시실 습도가 갑자기 상승해 문제 가능성이 발생했다. 현재는 보존실에서 살펴보는 중”이라고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근무했던 ‘1세대 보존과학자’ 강정식 씨는 “서양화 기법의 현대화가 위태로울 정도면 100년된 비단그림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이대로라면 ‘무릉도원’은 9월 하순까지 꼬박 14개월간 전시될 예정이다.



◇90억 원대 ‘호박’도 벗겨져=과천관 야외조각 전시장에 설치된 일본 미술가 구사마 야요이의 노란색 ‘호박’ 조각의 검정색 물방울무늬 자리에 성인 엄지손톱보다 큰 허연 이물질이 묻어 있다. 비슷한 크기(지름 180㎝)의 노란 ‘호박’이 2017년 크리스티 홍콩경매에서 약 93억 원(711만 달러, 수수료 포함)에 낙찰된 고가 미술품이다. ‘호박’ 맞은편 프랑스 조각가 자비에르 베이앙의 붉은색 ‘말’은 표면 군데군데 칠이 들뜨고 벗겨졌다. 장 피에르 레이노의 ‘붉은 화분’도 하단에 검게 긁힌 자국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한곳에 모인 주요 작품 3점 모두가 훼손된 상태다. 미술관 측은 “정기적으로 야외 조각품을 관리하고 있다”고 했으나 세금으로 운영하는 국가대표 미술관의 작품 관리라고 하기 힘들 정도다. 비바람에 노출된 야외 조각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이 같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작품 관리 허술함을 두고 미술계 일각에서는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운영 역량 부족을 지적한다. 특히 근대미술 전문가인 윤 관장이 ‘무릉도원’ 같은 고서화의 특수성을 간과한 것이나, 여러 작품들이 보존 문제를 드러낸 것도 최종적으로는 관장이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문제다. 한 지방미술관 관계자는 “지방이나 외부 미술관에서 작품 대여를 요청하면 ‘전시 후 6개월이 경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절해왔는데 유독 자신들의 전시에서는 왜 그 원칙을 지키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과천=조상인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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