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제도

LH, 땅투기 자초했나…'대외비' 신도시 후보지 그대로 노출

감사원, 26일 '국토개발정보 관리·농지법 위반' 감사보고서 공개

총 38건 위법·부당사항 확인…"22건, 경찰청에 수사 요청해놔"


임직원 땅투기 논란으로 존폐위기에 처했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수도권 3기 신도시 개발과정에서 대외비로 다뤄야 하는 사업후보지명을 버젓이 드러낸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은 26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국토개발정보 관리 및 농지법 위반 감독실태' 감사보고서를 공개했다. 이번 감사는 앞서 시민단체 참여연대가 지난해 3월 2일 정부의 수도권 3기 신도시 지정 과정에서 LH 임직원이 해당 지구에 포함된 다수의 필지에 대한 사전 정보를 취득하고 매입했다는 의혹을 제기, 공익감사를 청구한 데 따라 이뤄졌다. 참여연대는 같은 해 3월 22일 투기 대상으로 지목되는 농지에 대한 관리 및 감독의 적정성에 대해서도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이에 따른 감사 결과 총 38건의 위법·부당사항이 확인됐다. 감사원은 이중 22건(25명)에 대해 신속한 수사를 위해 감사기간 중 경찰청장에게 수사를 요청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전경./연합뉴스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 전경./연합뉴스




◇"3기 신도시 후보지명 버젓이 드러내"=감사원에 따르면 LH 서울지역본부는 2018년 사장 업무보고를 위해 '2018년 서울지역본부 업무보고', '주간경영회의 자료' 등 사업후보지 개발사업 관련 내용이 담긴 문서를 생산해 유통했다. LH 내부 보안지침 제101조에 따르면 사업후보지 관련 보고·협의 자료 등을 대외비로 처리하고 사업후보지명에 가제목을 사용하는 등 정보가 미리 누설되지 않도록 신중하게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LH 서울지역본부는 해당 업무보고에 주민공람공고가 되지 않은 '남양주 A지구' 등 5개 사업후보지를 실명으로 기재하면서 대외비로 처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지역본부에서 근무하던 직원 B씨는 업무보고 및 주간경영회의 자료 등을 보고받고 결재하는 과정 등에서 남양주 A지구에 도시개발사업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2018년 8월 A지구 인근 토지 1필지 및 건물을 배우자 명의로 지인들과 함께 매매계약을 체결해 소유권 이전 등기를 했다. B씨와 같이 업무상 비밀정보를 이용해 부동산을 거래한 사례는 5건이 추가로 있었다.

◇"후보지 관련 자료, 직원용 게시판에 게시"=LH가 사업후보지를 실명으로 기재하거나 후보지 관련 내용을 담은 회의자료를 다수 직원이 열람하는 부서게시판에 게재한 경우도 있었다. LH 대구경북지역본부는 2016년 5월 '대구 C지구' 개발사업과 관련한 내용이 담긴 주간회의 자료를 대구경북지역본부 직원이면 열람 가능한 LH포털 지역본부 게시판에 12회 게재했다. 당시 대구경북지역본부에 근무하던 D씨는 게시판을 통해 대구 C지구와 관련한 사업진행상황 등의 내용을 열람한 뒤 인터넷 검색 및 공인중개소 방문 등을 통해 사업후보지명 및 개발예정지를 추정해 2017년 1월 개발예정지와 인접한 토지를 매입했다.



감사원이 이번 감사기간 LH 포털의 13개 지역본부 게시판을 점검한 결과 부산울산지역본부는 2019년 5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총 12회에 걸쳐 17건의 월간회의자료를 게시했다. 이 중 13건의 월간회의자료에 후보지 선정 계획 및 진행 상황 등 후보지 관련 사항이 수록돼 있어 본부 소속 직원이 게시판 회의자료를 열람하는 등 방법으로 후보지 관련 정보 취득이 가능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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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회의자료 중 일부 자료에는 사업후보지 위치가 그대로 기재됐거나 사업후보지가 위치한 행정동명의 한글 초성으로 가제목 처리된 지구명이 기재돼 있어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사업후보지 위치를 추정할 수 있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감사원은 LH 사장에게 "앞으로 회의자료에 사업후보지 관련 사항을 수록하거나 보안성 자료를 전자결재 문서에 첨부해 유통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요구했다.

감사원/연합뉴스감사원/연합뉴스


◇LH 권한 악용 사례도…6억여원 양도 차익까지=LH 권한을 악용해 사적 이득을 취득한 사례도 있었다. LH 강원지역본부는 2014년 6월부터 2015년 2월까지 E공공주택지구 내에 있는 준주거용지, 주차장용지, 종교용지를 공급하기 위해 경쟁입찰 공고했지만 낙찰을 2회 실패했다. 이 본부는 2015년 5월에는 상수관로 매설부지 등 연접지를 분할해 취득하는 부지 정형화를 통해 가치를 증대시켜 판매하는 'E지구 수요맞춤형 제품판매 방안 검토'를 마련했다.

이 과정에서 본부 F부장은 2회 유찰된 준주거용지(1필지) 및 주차장용지(1필지)를 지인 명의를 통해 수의계약으로 매입하게 한 후 권리의무승계 계약을 통해 지인과 함께 자금을 조달해 이를 매입했다. 아울러 준주거용지 등 토지의 연접지(8필지)도 미공개 개발정보를 이용해 지인을 통해 수의계약 및 권리의무승계 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매입했다. 이후 이 중 일부 부동산을 매각해 지인들과 6억1300만여 원의 양도 차익을 실현했다.

특히 F부장은 사업인정 고시 전 개발사업에 필요한 용지를 취득하려면 사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도 연접지를 강원도와 협의 취득해 이를 다시 매각하는 과정에서 사장의 승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더불어 매매 차익의 실현을 위해 제3자에 매각하면서 기존 준주거용지 연접지 매매계약서의 특약사항(매수자는 상수관로 이전 요구 불가 등)을 누락해 선의의 매수자가 장래 LH에 상수관로 이전을 요구할 경우 LH가 25억여 원을 부담하게 될 위험을 초래했다.

이에 감사원은 LH 사장에게 "F부장 등에게 매각한 상수관로 매설부지에 대해 매매계약서 등에 따라 매매계약을 해제해 토지소유권을 회복한 후 수도시설 관리기관인 강릉시에 공급하는 등의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아울러 F부장에 대해서는 인사규정에 따라 징계처분(파면)하도록 문책을 요구했다.

한편 LH는 지난해 임직원 투기 논란이 불거진 이후 투기 재발 방지를 위해 전담조직을 신설하고 전 직원 재산등록 및 토지 거래 상시 검증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개발정보 유출 차단을 위해 공공택지 입지 조사 업무를 국토부로 이관하기도 했다. LH 관계자는 “이번 감사 결과 징계처분 요구 관련자에 대해서는 징계인사위원회 개최 등 신속한 후속절차를 진행해 중징계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박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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