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면담은 현지에서 한국 제조업의 위상이 더욱 높아진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국내 주요 그룹이 각자 조 단위의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한미 공급망 동맹 강화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특히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등 미래 산업을 중심으로 투자를 확대해 현지에서 고급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이에 미국에서는 한국 제조업을 적극 반기며 대규모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우선 SK그룹이 미국에서 향후 투자할 분야도 배터리·반도체·바이오를 중심으로 추진된다. 백악관은 SK그룹이 미국에 220억 달러(약 28조 8000억 원)를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고 브리핑에서 밝혔다. 앞서 최 회장은 지난해 미국 출장을 통해 2030년까지 총 52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고 이중 절반가량을 전기차 배터리와 수소, 에너지 솔루션 등 친환경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계획도 밝힌 바 있다.
대표적인 사업이 SK온과 포드의 전기차용 배터리 합작 사업이다. 양 사의 합작법인인 ‘블루오벌SK’는 이달 13일 공식 출범했고 지분은 양 사가 5 대 5로 보유하기로 했다. 각자 5조 1000억 원씩 총 10조 2000억 원을 투자하며 배터리 공장은 테네시주에 1개, 켄터키주에 2개 설립된다. 3개 공장의 연간 생산능력은 총 129GWh(기가와트시)에 달한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SK하이닉스가 1조 원 이상을 들여 실리콘밸리에 인공지능(AI)·낸드플래시 연구개발(R&D) 거점을 신설하기로 했다. 또한 미국에 본사를 둔 원료 의약품 위탁 생산 기업 SK팜테코는 현지에서 바이오 사업 협력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 밖에 SK E&S는 현지 에너지 솔루션 기업인 키캡처에너지(KCE) 지분 약 95%를 인수했으며 미국 에너지 기업인 레브리뉴어블스에 최대 4억 달러(약 5200억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SK의 투자는 현지 일자리 창출에도 크게 기여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최 회장은 지난해 테네시주 지역구 상원의원들을 만나 “SK온의 조지아 공장에 이어 포드와 합작해 켄터키·테네시주에 2027년까지 설립하기로 한 대규모 배터리 공장이 완공되면 3개 주에서 모두 1만 1000여 명에 이르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대규모 투자는 현지의 인센티브 지급으로 이어지며 한미 양국이 윈윈 효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조지아주는 SK온에 20년간의 토지 무상 임대와 3억 달러(약 4000억 원) 상당의 인센티브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지아주에 전기차 공장을 짓는 현대자동차 또한 주 정부로부터 세금 감면을 비롯해 2조 4000억 원에 가까운 인센티브를 지원받기로 했다. 앞서 현대차는 5월 조지아주 서배너 인근에 2025년까지 연간 30만 대 생산능력의 전기차 전용 공장과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고 현지에서 81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발표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제너럴모터스(GM)의 배터리 합작사인 ‘얼티엄셀즈’도 바이든 행정부의 대규모 금융 지원을 받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에너지부는 얼티엄셀즈의 오하이오·테네시·미시간주 공장에 25억 달러 규모의 대출 지원을 발표할 계획이다. 얼티엄 측은 “신규 투자로 미국에서 5000개의 양질의 일자리가 새로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이르면 7월 말 처리될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 반도체 지원법의 수혜를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법안은 미국의 부족한 반도체 제조 역량을 보완하기 위해 생산 설비 투자에 총 520억 달러에 달하는 보조금과 인센티브를 지원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삼성전자는 현재 텍사스주 오스틴에 반도체 공장 2곳을 운영 중이며 지난해 11월 테일러에 170억 달러를 들여 파운드리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에 더해 삼성전자는 세제 지원을 받기 위해 향후 20년간 미국 현지 반도체 공장에 총 1921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중장기 계획을 최근 텍사스주 정부에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