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 진화는 창조 아닌 표절·모방의 결과다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닐 슈빈 지음, 부키 펴냄





“자연이 작곡가였다면 역대 최고의 저작권 위반자로 등극했을 것이다.”



세계적인 고생물학자이자 시카고대 생명과학과 석좌 교수인 닐 슈빈은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에서 40억 년의 생명 진화사를 이 한 문장의 농담으로 압축한다. 팔다리, 날개와 깃털, 지느러미, 커다란 뇌와 뛰어난 인지 능력 등 생명의 진화를 이끈 혁신과 발명은 생물들이 수십억 년 동안 서로 베끼고 훔치고 변형한 결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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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세인트 조지 잭슨 마이바트라는 과학자가 찰스 다윈(1809~1882)의 ‘종의 기원’에 던진 위대한 질문 하나로 시작한다. 다윈은 “진화란 한 종에서 무수한 중간 단계를 거쳐 다른 종이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이바트는 진화상에 큰 변화가 일어나려면 몸 전체에 걸쳐 형질 변화가 한꺼번에 일어나야 한다는 견해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예를 들어 새가 비행하려면 날개, 깃털, 속이 빈 뼈, 높은 대사율 등에서 모두 진화가 이뤄져야 한다. 그렇다면 커다란 진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말은 자체로 형용모순 아닌가. 다윈은 마이바트의 비판에 ‘기능의 변화’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생물의 몸에 생긴 발명의 대부분은 단지 기존의 형질 기능이 바뀌면서 생겨났다는 것이다.

가령 깃털, 날개 돋친 팔 등은 새가 하늘을 날 때부터 탄생한 게 아니라 원래 공룡이 갖고 있던 것을 새가 날기 위해 가져다 쓴 것에 불과하다. 사실 동물의 몸에는 표절과 도용이 가득하다. 갈비뼈, 척추뼈, 팔다리뼈 등 많은 동물의 골격은 전반적인 설계가 비슷하다. 또 시각, 후각, 호흡, 단백질 생명 등의 기능을 담당하는 유전자들도 모두 복제된 것들이다.

저자는 과거 생물학 연구를 더듬으며 자연이 유전자 복사 과정에서 시행착오로 발생한 돌연변이라는 연료를 버리지 않고 어떻게 진화로 이끌었는지 설명한다. 점핑 유전자(염색체 내의 한 위치에서 다른 위치로 움직일 수 있는 DNA 서열)는 하나의 작은 변이가 일어날 확률도 낮은데 변이가 게놈(한 생물이 가지는 유전 정보) 수백 군데에서 어떻게 동시에 일어날 수 있는지 설명해준다. 이 유전자는 오로지 자기 사본(寫本)만 만드는데 때로 유용한 돌연변이를 게놈 곳곳으로 실어나른다.

우리 DNA는 유전이나 복제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바이러스는 숙주에 침입했다가 게놈과의 전쟁에서 패배해 게놈의 일부가 된 뒤 기억과 인지 능력을 향상시키기도 한다. 서로 다른 세포도 병합하고 조립하는 방식으로 진화한다. 동물 세포의 미토콘드리아, 식물 세포의 엽록체는 원래 자유 생활을 하다 진핵 세포에 병합해 결국 그 세포를 위한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 게놈에서 10%는 태고의 바이러스가, 60% 이상은 폭주하는 점핑 유전자가 만들어낸 반복 서열이 차지한다. 우리 자신의 유전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2%에 불과하다”며 “우리는 지구상의 나머지 생명체와 연결되어 있다”고 말한다. 1만8000원.


최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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