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이 올해 본예산(607조 7000억 원) 대비 증가율이 5% 중반을 넘지 않는 640조 원대 이하에서 결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 5년간 연평균 10%가량을 기록한 예산 증가율이 윤석열 정부가 처음 편성하는 내년 예산에서 절반 수준으로 낮아지는 것이다. 재정 중독에 취해 만연했던 현금성 지출 사업 등을 억눌러 무너진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1일 서울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는 내년 예산 증가율을 올해 본예산 대비 5% 중반을 상회하지 않는 범위에서 설정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이에 따라 내년 살림 규모는 640조 원대 이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세부 예산 사업을 이달 확정한 뒤 다음 달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새해 본예산은 13년 만에 전년도 예산(추경 포함)보다 줄어든다. 우리나라 역사상 다음 해 총지출이 전년보다 축소된 사례는 2010년 단 한 번밖에 없었다. 예산 당국 사정에 정통한 한 여당 인사는 “당국이 일종의 총지출 증가율에 마지노선을 그어놓고 개별 지출 사업을 정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발표된 재정 관리 목표에 견주면 증가율을 억제하려는 당국의 의지는 더 도드라진다. 정부는 연간 재정적자(관리재정수지 기준)를 국내총생산(GDP) 대비 3% 내로 관리하겠다는 내용의 재정준칙을 지난달 발표한 바 있다. 내년 국세 수입만 400조 원을 웃돌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재정준칙에 따라 허용되는 최대 총지출 증가율은 6% 수준으로 추산된다. 재정준칙 이상으로 씀씀이를 관리해 재정 건전성을 서둘러 회복하겠다는 게 당국의 방침이다.
전문가들은 예산 총량을 조절하는 동시에 관행적으로 편성된 연구개발(R&D) 예산과 경직성 복지 지출 등을 과감하게 구조 조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정훈 재정정책연구원장은 “고령화 추세에 따라 재정 악화가 만성화할 수밖에 없다는 게 우려되는 대목”이라며 “지출 증가분을 통제하는 것을 넘어 연금과 건강보험 개편처럼 굵직한 재정 개혁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참석해 "내년 예산은 건전재정 기조로 전환해 역대 최고 수준의 지출 구조 조정을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