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하고 또 칠한다. 새로운 칠은 있던 것의 색을 지운다. 덧바르는 과정은 또다른 흔적을 만든다. 50년 가까이 ‘평면조건(Condition Planes)’이라는 주제 아래 롤러질을 반복하는 거장 최명영의 작업 방식이다. 수행같은 작업 속에 단순한 조형언어가 깊이있는 울림을 만들어 낸다. 절제의 힘이다.
올리고 또 올린다. 정교하게 쌓아올린 물감을 섬세하게 깎아내는 순간, 지층처럼 축적된 시간과 과정이 보인다. 작가 김태호가 약 20년간 전개해 온 ‘내재율(Internal Rhythm)’ 연작이다. 반복된 붓질은 수직과 수평을 가로지르며 물감층 그 자체의 리듬을 형성한다.
1970년대부터 추구해 온 ‘단색화’ 작가 최명영과 ‘포스트 단색화’의 대표주자로 꼽히는 김태호의 2인전이 제주도 서귀포시 토평동 제주담 스튜디오갤러리에서 30일까지 열린다. 작가이면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정형준 제주담 스튜디오갤러리 대표는 “단색화는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장르이며, 두 작가는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의 ‘단색화’는 하나의 색조라는 시각적 특징보다도 반복적 행위와 정신성을 강조한 ‘수행성’이 두드러진다. 색채를 절제하고, 붓질의 반복을 통해 감정분출도 억제해 탄생한 명상적 화면은 동서양을 넘나들며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전시에는 최명영의 작품 2점과 김태호의 작품 4점 및 판화가 함께 선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