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금융정책

경기 나빠지는데 '연봉 눈높이'는 그대로…핀테크 '채용 포기' 속출

■빅테크發 '개발자 고연봉' 부작용 잇따라

"필수인력 외에는 채용 규모 줄여 글로벌 경기 악화에 대비"

중소 핀테크·스타트업선 저임금 불만에 개발자 이직 러시

퇴사자 막으려고 비밀리에 개발자 연봉만 올려주는 업체도


지난달 15일부터 보름간 경력 채용을 시작한 케이뱅크. 1300여 명의 지원자가 한꺼번에 몰렸다. 채용 분야는 사용자인터페이스·경험(UI·UX), 기술 등 개발 분야와 경영 직군, 비즈니스 기획 등으로 다양했다. 암호화폐 거래소인 코인원 역시 최근 50명을 뽑기 위해 진행한 개발자 경력 채용에 700여 명의 지원이 쏟아졌다.

카카오뱅크는 올해 상반기 기준 전체 임직원이 지난해 말보다 208명 늘어난 1239명을 기록했다. 그간 카뱅은 출범 첫해를 제외하고 매년 전년보다 임직원이 100여 명씩 증가해왔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연간 증가 규모의 두 배에 달하는 인력을 채용한 셈이다. 카뱅은 지난해 전 직원의 연봉을 1000만 원 이상 혹은 20% 일괄 인상하고 스톡옵션 지급, 개인 성과급 신설 등을 시행했다.







주요 인터넷은행, 암호화폐 거래소 등의 채용에 지원자가 몰리는 데는 지난해 개발자 고연봉 열풍을 타고 평균 연봉이 높아진 탓도 있지만 최근 경기 불확실성으로 이들 기업의 채용 문이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기업들은 올해 들어 채용 전략을 잇따라 수정하며 더 이상 막무가내식 고연봉 개발자 채용은 멈추겠다는 의사를 내비치고 있다.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는 3일 열린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2분기 영업이익경비율(CIR)이 소폭 상승했다”며 “최근 매크로 환경 등을 감안해 하반기에는 채용 전략을 수정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CIR은 총 영업이익에서 인건비·전산비·임대료 등 판매 및 관리비가 차지하는 비중으로 수치가 낮을수록 경영 효율성이 높다는 의미다. 카뱅의 CIR은 지난해 말 45%에서 올해 1분기 43%로 줄었으나 3개월 만에 44%로 소폭 올랐다. 이성호 카카오페이 재무총괄 리더 또한 “필수적이지 않은 인력 채용을 축소하고 비용 집행 과정을 개선해 대외 경기 악화에 대비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빅테크발 개발자 임금 인플레이션도 정점에 달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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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임금 인플레이션의 부작용은 아직 시장에서 자리 잡지 못한 중소 핀테크 업체들에서 터졌다. 높아진 개발자 임금을 맞춰주면서 동시에 하반기 경기 불황을 대비해야 하는 중소 핀테크 업체는 생존까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들은 서비스 개발에 필요한 필수 인력조차 확보하는 데 허덕이는 상황에서 물가 상승 등으로 허리띠까지 졸라 매야 한다며 사업을 계속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토로한다. 인슈어테크 업체 A사는 올해 개발 경험이 풍부한 시니어 개발자의 채용을 아예 포기했다. 개발자 경험을 1~2년밖에 하지 못한 주니어 개발자만 채용해 교육하는 방향으로 채용 전략을 돌렸다. 확고한 수익 모델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빅테크 수준의 인건비를 부담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간편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B사는 올해 개발자들의 퇴사를 막기 위해 비밀리에 개발자들만 연봉을 인상했다. 회사 내 인사·회계 등 경영 직군의 직원들에게는 이를 비밀에 부쳤다. 이마저도 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개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UI·UX 업무의 일부분은 하청 업체에 맡겨야 했다. B 업체의 대표는 “토스·네이버페이·두나무 등에서 워낙 높은 연봉을 내걸다 보니 핀테크 업체들이 아무리 스톡옵션을 준다고 해도 개발자들이 내켜하지 않는다”며 “대표 몫으로 나오던 주차권도 없애고 개발자들에게만 주차권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암호화폐와 관련한 서비스를 개발하는 C사는 최고기술책임자(CTO)를 영입하는데 최고경영자(CEO)가 CTO에게 두 차례나 프레젠테이션(PT)을 해야 했다. C사의 한 관계자는 “개발자를 5개월 동안 한 명도 데려오지 못했다”며 “투자를 받아 직원을 많이 확보하는 게 목표가 됐다”고 언급했다. 최근 1000억여 원의 투자금을 유치한 마이데이터 운영 업체 D사의 대표는 아예 투자금으로 다른 스타트업의 개발자를 통째로 인수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그나마 지금은 투자 받은 자금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하지만 국내외 경제 금융 변동성이 커지면서 하반기부터는 벤처캐피털(VC) 등으로부터 투자금을 확보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개발자를 비롯한 구직자들은 여전히 높은 연봉, 복지 수준을 요구하고 있어 핀테크 기업과 구직자 간 일자리 미스매치는 극에 달하는 상황이다. 한국핀테크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일자리 매칭존 운영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기업 채용 공고는 1325건으로 집계됐다. 올해 상반기만 해도 711건으로 6개월 단위로 비교해봐도 기업 채용 수요는 매년 증가해왔다. 그러나 일자리 매칭이 이뤄진 것은 올해 상반기 45건에 불과했다. 통상 매칭이 하반기 많이 이뤄지는 점을 고려해도 2020년 하반기(64건)보다 적었다.

올해 코로나19발 비대면 열풍을 타고 우후죽순 생겨난 핀테크 업체들의 생사가 갈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D사의 대표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사업 모델의 수익 구조보다는 마케팅에 돈을 쏟아부어 고객을 늘리는 등 외형을 키우는 데 집중해도 투자를 받는 데 무리가 없었다”며 “올해는 상황이 바뀌어 지속 가능한 사업 모델을 갖췄는지에 따라 투자 유치 성패가 달라져 핀테크 시장이 더 치열해질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김지영 기자·조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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