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던 탄소배출권 상장지수펀드(ETF)들이 연일 강세를 이어가며 수익률 상위권에 올랐다. 이들 ETF는 지난해 ‘탄소 중립’ 바람을 타고 주가가 꾸준한 상승 흐름을 보였지만 전쟁 발발 이후 이어진 에너지 대란에 탄소배출권 가격이 급락하자 상반기 성과가 마이너스(-)로 돌아선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주요국이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제도 보완에 다시 시동을 걸면서 탄소배출권 가격 상승 전망에 힘이 실리자 그 기대감이 주가에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주간(8월 1~8일) 국내에 상장된 탄소배출권 관련 ETF들의 주가가 연일 뛰면서 높은 수익률을 거둔 것으로 나타났다.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유럽 탄소배출권 12월물 가격을 추종하는 ‘SOL유럽탄소배출권선물S&P(H)’는 이 기간 6.69%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유럽 탄소배출권 선물(EUA)에 투자하는 ‘KODEX유럽탄소배출권선물ICE(H)’ 역시 6.66% 수익을 냈다. 같은 기간 글로벌 탄소배출권 선물 3개 종목, 5개 종목에 투자하는 ‘HANARO글로벌탄소배출권선물ICE(합성)’와 ‘SOL글로벌탄소배출권선물IHS(합성)’도 각각 5.87%, 6.43%의 성과를 내며 수익률 상위권에 올랐다.
이들 ETF는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 중립 흐름에 불이 붙었던 지난해 상승 랠리를 이어갔지만 올 들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부추긴 인플레이션 및 에너지 대란으로 그 기세가 크게 꺾였다. 올 2월 초 98유로 선까지 오르며 100유로 선을 위협하던 유럽 탄소배출권 12월물 가격은 전쟁 이후 58유로 선까지 폭락했다. 이후 전반적 증시 침체로 대체 투자가 주목받으면서 가격이 일부 회복되기도 했지만 변동성은 확대되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전쟁 발발 이후 6개월간 탄소배출권 선물 가격을 추종하는 국내 ETF 4종의 수익률은 -9%대에서 최대 -13%대까지 하락했다.
그러나 최근 주요국이 탄소 중립 장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규제 움직임에 다시 속도를 내면서 탄소배출권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시장에 기대감이 실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가 203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40% 감축하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인플레이션감축법’이 7일(현지 시간) 상원을 통과하면서 하원에서도 이번 주 내로 해당 법안을 표결에 부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에서도 탄소 배출 감축 계획안인 ‘핏 포 55(Fit For 55)’ 가운데 일부 법안에 대한 의회와 이사회의 입장이 이달 들어 모두 결정된 데 따라 하반기 협의를 통해 최종 법안 마련에 나설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전문가들은 유럽 탄소배출권 가격이 내년까지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봤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최근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 탄소배출권 전문가들은 유럽 탄소배출권 가격이 올해 톤당 평균 88.36유로 선을 형성하고 2023년 97.66유로, 2024년 101.96유로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4월 예상치보다 3~4%대 상향 조정된 수치다.
박수민 신한자산운용 ETF상품팀 부장은 “이번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과 함께 미국 내 탄소배출권 규제 강화 및 배출권 시장 참여 주(州) 확대 가능성은 관련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며 “유럽 에너지 안보에서 시작된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불확실성이 미국 물가 상승의 주요한 원인이 된 점을 고려하면 경제 전반의 탄소 배출 감축 목표는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인플레이션 상황이 지속될 시 탄소배출권 가격의 변동성이 지속될 수 있는 것은 주의해야 할 점으로 지적됐다. 에너지 대란이 장기화하며 생산 둔화가 길어질 경우 탄소 중립 기조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 경우 기업들의 탄소배출권 구매 수요가 줄면서 가격 상단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