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투톱’인 삼성전자(005930)와 SK하이닉스(000660)의 주가가 연일 약세다.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의 불씨가 반도체 산업으로 번지면서 된서리를 맞는 모양새다. 여기에 엔비디아가 촉발한 반도체 업황 둔화 우려마저 덮치며 주가를 짓누르고 있다는 분석이다.
9일 오전 11시 2분 기준 삼성전자는 전 거래일보다 1.81% 하락한 5만 9700원을 기록하며 6만 원선이 다시 깨졌다. 같은 시각 SK하이닉스 역시 전일 대비 1.77% 내린 9만 4600원을 기록 중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칩4(Chip4)’가 한국 반도체 기업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에 투자심리가 약화된 것으로 분석된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칩4로 인한 수혜는 미국 기업에 집중될 전망”이라며 “한국 기업의 경쟁자인 마이크론과 인텔의 생산 및 기술 역량 강화 가능성과 중국이 한국에 대한 제재를 할 경우도 부정적”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현재 한국 메모리 반도체 수출의 75%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이어 “특히 중국 내 삼성전자 시안 낸드 팹과 SK하이닉스 우시 디램(DRAM) 팹 운여에 대한 규제가 가능하다"고 했다.
미국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가 시장 예상보다 낮은 매출 전망치를 발표한 점도 반도체 업황에 부담을 주고 있다. 엔비디아는 예비 분기 실적 보고서에서 게임 부문 매출이 크게 줄어 전체 매출이 67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시장의 예상치이자 이전 가이던스인 81억달러를 밑도는 수준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엔비디아의 실적 악화가 반도체 업황 둔화의 신호탄으로 해석하고 있다. 컴퓨터, 스마트폰 등 IT 기기 판매 급감하며 반도체 업계가 악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 2분기 한국 반도체 업체들은 환율로 인해 기록적인 분기 실적을 거뒀지만, 수요 약세에 대한 우려를 지우지 못했다. 시장조사 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올 6월 반도체 판매량은 6월 기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했다. 통상적으로 신학기가 시작되는 6월은 IT 기기 판매 성수기로 통하지만, 올해는 정반대의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메모리 반도체 겨울이 예상보다 일찍 다가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만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내년 D램의 비트 단위 수요 증가율은 8.3%로 예상된다. 트렌드포스가 예상한 연간 D램 수요 증가율이 한 자릿수에 그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증권가에서는 이 같은 메모리 업황 둔화 우려를 고려해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실적 전망을 줄줄이 하향하고 있다. 신한금융투자는 최근 보고서에서 삼성전자의 올해 연간 영업이익 추정치를 기존 58조4860억원에서 54조311억원으로 7.6% 낮췄고, 메모리 사업 비중이 더 큰 SK하이닉스의 전망치는 기존 15조5182억원에서 13조2천60억원으로 14.9% 내려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