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선거를 비롯해 지방선거·재보궐선거 등 선거 3연승을 거둔 여당이 결국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들어갔다. 선거 패배로 일찌감치 비대위를 띄운 더불어민주당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한쪽은 패배를 해서, 다른 한쪽은 승리 뒤 내분의 성격이 짙다. 그래서 비대위 체제를 바라보는 여당 지지자들의 표정은 복잡하다. 비대위 체제가 성공해도 자칫 짙은 흉터만 남긴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우여곡절 끝에 ‘주호영호 비상대책위원회’가 9일 출범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내부 총질’ 메시지가 유출된 지 14일 만에 당 지도 체제가 전환된 것이다.
당이 조속히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으면서 전국위원회는 당헌 개정안과 비대위원장 임명안을 속속 통과시켜 출범을 승인했다. 비대위는 내분 수습과 지지율 반등이라는 난제를 풀어야 하지만 그전에 소송 위험과 전당대회 시기 조율 등 넘어야 할 고비가 적지 않다.
국민의힘은 이날 하루 종일 숨 가쁘게 움직였다. 전국위는 오전 권성동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에게 비대위원장 임명 권한을 부여하는 당헌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권 대표 대행은 곧바로 의원총회를 열고 주호영 비대위원장 임명을 만장일치로 추인 받았다. 이후 전국위는 비대위원장 임명 안건을 투표에 부치고 최종 가결해 비대위 출범을 확정했다.
5선인 주 비대위원장은 중도 보수 성향의 인사로 계파색이 옅다는 것이 강점이다. 21대 국회 개원 당시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로 미래한국당과의 통합과 ‘김종인 비대위’ 출범 등을 안정적으로 관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주 비대위원장은 당연직(2명) 이외 6명 안팎의 위원을 선정해 늦어도 다음주 초 ‘완전체 비대위’를 발족할 계획이다.
주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의 최우선 과제로 ‘내분 수습’과 ‘혁신적 변화’를 꼽았다. 그는 “이 대표를 이른 시일 안에 만나고 싶다”며 “혁신위원회를 적극 지원하고 민생도 빈틈 없이 챙기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정부에 쓴소리도 과감히 하며 당·정·대 관계를 정상화시키겠다고 했다.
다만 비대위가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우선 소송 리스크가 있다. 이준석 대표는 이날 “가처분 신청을 하고 신당 창당은 없다”며 대표직 복귀를 위한 법적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가처분이 인용될 경우 비대위는 좌초 위기에 직면하고 반격의 빌미를 잡은 이 대표와 친윤계와의 신경전은 더욱 격렬해질 수 있다.
비대위의 활동 기간도 갈등의 불씨로 남았다. 차기 총선 공천권을 쥔 대표를 뽑는 전당대회 시기와 직결된 비대위 기간을 두고 ‘2개월 관리형’과 ‘5개월 이상 혁신형’으로 내부 의견이 갈린다. 주 비대위원장은 “빠른 시간 안에 정상적 지도 체제를 구축하겠다”면서도 “국정감사, 예산 편성 시기에 전대를 진행하는 것은 아니지 않냐”며 가을 전대 개최에 반대의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당권 도전을 시사한 김기현 의원과 일부 친윤계 의원들은 여전히 ‘9~10월 전대론’을 고수하고 있다. 안철수 의원은 이날 민·당·정 토론회 뒤 “전당대회 준비가 비대위원장의 역할”이라며 “역할이 주어진다면 마다하지 않겠다”고 당권 도전 의사를 공식화했다. 당권 레이스가 조기에 막이 오른 상황에서 당권 주자들 간의 이해관계를 매끄럽게 조율하는 것이 비대위의 숙제로 남은 셈이다.
비대위 인적 구성도 잠복된 뇌관이다. 친윤계의 드라이브로 비대위가 출범한 상황에서 위원 다수를 이들이 꿰찬다면 쇄신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팽배할 수 있다. 이런 논란을 의식한 듯 주 비대위원장은 “상황이 이렇게 어려운데 책임이 있는 분들은 비대위에 참여가 어려운 것 아닌가 생각한다”며 친윤계 의원들 인선에 신중을 가하겠다고 예고했다.
향후 한 달간 국민 눈높이를 충족하는 운영 성과를 내는 것이 비대위 존속을 판가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수영 정치평론가는 “혁신형·관리형보다 국민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 관건”이라며 “권력 투쟁 기구 이미지를 벗고 위기 수습에 몰두하면 비대위에 힘이 실리고 혁신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