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증권일반

[시그널] 국민연금, 최대 투자 日'전범기업' 신에츠가 뭐길래…

작년 말 신에츠화학 지분 5124억 원 보유

정치권 등 비판에도 1년 전보다 지분율 늘려

PVC·반도체웨이퍼 생산 세계 1위 회사 불구

일제강점기 한국인 강제 동원 기업 '악명'

국민연금 '네거티브 스크리닝' 구체화 시급





‘전범 기업 투자’는 정치권 등에서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단골로 제기하는 비판의 소재 중 하나다. 국민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연기금이 일본의 전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사회적 책임에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일본 전범 기업에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일부 전범 기업에 대해선 오히려 지분율을 늘리기도 했다. 신에츠화학이 대표적이다.



국민연금공단이 지난 10일 공시한 ‘해외 주식 종목별 투자 현황’을 보면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신에츠화학의 지분 0.6%를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1년 전인 2020년 말(0.46%)보다 0.14%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평가액으로 따지면 5124억 원으로 전년 말(3709억 원)보다 38.2% 늘었다.

신에츠화학은 국민연금이 94번째로 가장 많이 투자한 해외 주식이다. 공정 자동화용 부품을 생산하는 키엔스(31위)에 이어 국민연금이 두 번째로 가장 많이 투자한 일본 기업이기도 하다. 시가총액은 7조 2603억 엔(약 70조 9000억 원)으로 일본 증시에서 13위에 올라있다.

국민연금이 신에츠화학에 적지 않은 투자를 이어오고 있는 것은 폴리염화비닐(PVC)과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 부문에서 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를 기록할 정도로 영향력이 큰 화학 회사기 때문이다. 반도체에 들어가는 포토레지스트(감광액) 분야에서도 JSR에 이어 세계 점유율 2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실적도 좋다. 지난 4~6월(1분기·신에츠화학은 3월 결산 법인) 매출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51.2% 증가한 6567억 엔(약 6조 4000억 원)을 나타냈으며,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93.8% 늘어난 2496억 엔(약 2조 4000억 원)을 기록했다.

미국 주택용 염화비닐 판매가 호조를 보인 가운데 반도체 실리콘 웨이퍼 매출 역시 증가세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엔화 약세에 따른 환차익도 가세하면서 신에츠화학의 실적 증대에 영향을 줬다. 지난 2021년 1년간 주가 상승률은 10.4%로 같은 기간 닛케이225지수 상승률(4.9%)을 웃돌았다.

◇‘전범 기업’ 신에츠화학



문제는 신에츠화학이 일본 ‘전범 기업’으로 분류된다는 점이다. 신에츠화학은 지난 2012년 국무총리실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 위원회’에서 발표한 299개 일본 전범 기업 중 하나다. 신에츠화학은 1926년 설립돼 일본 전쟁 물자 생산을 지원하면서 일제 강점기 한국인들을 강제 동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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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은 다른 ‘전범 기업’에 대해서도 투자를 유지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구보다에 대한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지난해 말 기준 0.38%로 지분 평가액이 1189억 원에 달한다. 쓰미토모금속광산의 지분율은 지난 2020년 말 0.65%에서 2021년 말 0.77%로 늘어나 지분 평가액도 918억 원에서 1009억 원으로 불어났다.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 비중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일본 시가총액 상위 기업에도 투자액을 늘리면서, 부득이하게 전범 기업 투자 비중이 늘어났다는 해석도 있다. 다만 대표적 ‘전범 재벌’로 꼽히는 미쓰비시그룹에 대해선 투자 규모를 점차 줄이는 모습이다. 미쓰비시상사의 국민연금 지분율은 2020년 말 0.31%에서 작년 말 0.21%로 감소했으며 미쓰비시전기도 0.25%에서 0.22%로 줄었다. 미쓰비시그룹은 태평양 전쟁 당시 군수물품 조달을 위해 한국인 10만 명을 강제노역시킨 곳이다.

2018년 말 기준으로 228억 원어치의 지분을 보유했던 미쓰비시중공업에선 아예 손을 뗐다. 대법원은 지난 2018년 미쓰비시중공업이 강제 동원 피해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은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무조건 금지 어려운 ‘전범기업 투자’…‘네거티브 스크리닝’ 전략에 달렸다


김용진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지난해 10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는 모습./권욱 기자김용진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지난해 10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는 모습./권욱 기자


정치권 등에선 국민연금이 신에츠화학 등 전범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꾸준히 지적해왔다.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지침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을 고려한 책임 투자를 하도록 명시하고 있는데, 전범 기업 투자를 지속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비판이다.

지난 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감에서도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국민연금의 전범 기업 투자 규모가 1조 5797억 원(2020년 기준)에 달한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했다. 한일 무역 분쟁 이슈가 대두됐던 지난 2019년에는 김광수 민주평화당 의원이 국민연금의 일본 전범 기업 투자를 막는 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다만 전범 기업 투자 제한 법안의 경우 유관 부처에서 신중론을 제기하면서 국회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특정 기업에 대한 투자 제한 문제는 법률보단 기금운용위원회 합의를 거쳐 지침 등으로 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전범 기업 제한을 ‘법률’로 명시하는 것은 외교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는데다 기금 운용 독립성까지 해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에따라 전범 기업 투자 문제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에서 ‘네거티브 스크리닝’ 전략을 어떻게 구체화하느냐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김용진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전반적인 죄악산업과 전범기업을 포함해 네거티브 스크리닝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기금운용위원회 차원의 논의를 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네거티브 스크리닝은 ESG 수준이 좋지 않은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빼는 것을 말한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5월 네거티브 스크리닝 전략 도입을 공식화했지만, 아직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명시하진 않고 있다.


심우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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