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노동 개혁을 꺼내 들었다. 4차 산업혁명으로 급변하는 산업을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노동법 체계와 뿌리 깊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1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념 기자회견에서 노동 개혁에 대한 질문에 “지금의 노동법 체계는 2차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법 체계”라면서 “4차 산업혁명 등 새로운 산업 구조 하에서는 그것에 맞도록 노동법 체계도 바뀌어야 한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노동 개혁을 말하며 “인기 없는 정책이라도 밀어붙이겠다”는 국정 운영의 기조를 재차 밝혔다. 윤 대통령은 “노동 개혁을 한 독일의 사민당은 정권을 17년 놓쳤지만 독일 경제와 역사에 매우 의미 있는 개혁을 했다”며 “교육 개혁, 노동 개혁, 연금 개혁 등 3대 개혁은 중장기 국가 개혁이고 플랜”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사례로 든 독일의 하르츠 개혁은 노동 유연성을 높인 노동 개혁의 모범 사례로 평가된다.
윤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아 노동 개혁을 공개적으로 꺼내든 배경에는 심각한 ‘일자리 미스매치(불균형)’가 있다. 전 세계는 초고속 통신망과 빅데이터,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되고 있다. 전통 제조업 형태의 ‘9 to 6’ 노동이 무너지고 출퇴근이 유연한 플랫폼 노동은 확산되는 추세다.
하지만 우리 노동시장은 여전히 대형 사업장의 정규직이 성과에 관계없이 높은 고용 안정성과 고임금의 기득권을 누리고 있다. 하청 또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저임금에 내몰리는 상황이다. 기업들은 정규직 채용을 꺼리고 비정규직은 저임금에 시달리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게 우리 노동시장의 현주소다.
학계에서도 현재의 노동법을 1950~1960년대에 머물고 있는 공장 시대 노동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기업의 규모, 근로자 지위, 계약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노동시장의 구조가 양극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윤 대통령도 임기 중 노동 개혁을 통해 심각한 노동시장의 불균형을 바로 잡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윤 대통령은 “노동 공급은 기업과 산업의 수요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을 해주지 못한다면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결국 우리나라 전체의 국부, 또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소득이 줄어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같은 기업에서 같은 노동을 하는 정규직과 파견 근로자, 대기업과 소기업 간 양극화와 분절은 공정성 측면에서 개선돼야 한다”며 “(대우조선해양) 하청지회 파업처럼 임금과 노동에 대한 보상이 정당한지 노동시장 양극화에 대해 정부가 고민하고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불법 파업에는 법과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을 거듭 밝혔다. 윤 대통령은 “법과 원칙은 노사를 불문하고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고 정부의 일관된 원칙을 시장에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노동 개혁 의지를 밝히면서 정부의 대책 마련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노동부는 미래노동시장연구회라는 전문가 기구를 통해 능력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고 주 52시간 근로제를 유연화하는 근로시간 체계 개편 방안을 모색 중이다. 또 고용부는 사회적 합의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와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 방안을 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