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17일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비핵화 협상에 임할 경우 유엔의 제재 면제 프로그램을 활용해 '한반도 자원식량교환프로그램(RFEP)'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우리가 얘기한 자원식량교환프로그램은 제재 해제를 해주는 게 아니다"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8·15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대북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을 발표하며 자원식량교환프로그램을 언급했는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상 북한 광물의 외부 반출은 금지돼있어 실효성 문제가 제기됐다. 대북제재 해제에 대한 미국의 반대를 감안할 때 현실성이 낮다는 얘기다. 네드 프라이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 역시 협상 초기 단계에서의 제재 해제 가능성을 묻는 취재진의 말에 "현재로선 완전히 가정"이라며 즉답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 고위당국자는 "담대한 구상과 아무 상관 없는 질문"이라며 "(자원식량교환프로그램은) 제재의 틀을 유지하는 가운데 유엔 제재 면제 제도를 활용해서 해보겠다는 아이디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담대한 구상 내용에 대해서는 한미 간 긴밀히 협의가 다됐고 미국이 얘기한 대로 목표와 원칙, 방향성에 대해 강력히 지지한다"며 "세부사항과 이행 관련 협상 과정에서 긴밀히 공조해나간다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이 고위당국자는 또 "지금도 여러 인도적 사업은 제재 면제를 받아 하고 있다"며 "북한이 협상에 나왔을 때 초반부터 제재 면제 제도를 활용해서 (자원식량교환프로그램을) 추진해볼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피력했다. 관련한 한미 협의 상황을 묻는 말에는 "제재 면제는 유엔 안보리 제재위원회에서 하는 것"이라며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비핵화 협상으로 나온다면 이런 우리의 구상을 안보리 이사국들과 협의해볼 수 있겠다는 게 우리 입장"이라고 재차 밝혔다. '현시점에서의 제재 면제 프로그램 활용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는 지적에는 "우리가 상정한 상황은 북한이 진정성을 갖고 비핵화 협상에 나왔을 때"라며 "지금 상황에서 보실 필요는 없다"고 일축했다.
이 고위당국자는 '북한의 진정성을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비핵화 협상 역사가 있기 때문에 북한이 어떤 자세나 행동을 해야 상대방이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갖고 있다'고 인식할지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면서 "북한이 도발하거나 도발 준비를 하면서, 또는 비핵화에 관심이 없다고 하면서 협상을 하자고 하면 비핵화가 될 가능성이 없지 않으냐. (이런 상황들과 관련해) '진정성을 갖고 비핵화 협상장에 나오게 되면'이라고 표현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를 요구하며 협상장에 나오는 것 역시 비핵화에 진정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답을 하기 힘든 문제"라면서도 "서로 간 협상이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답변했다. 아울러 "어쨌든 우리는 북한과의 협상에 준비돼있다는 신호를 발신하는 것이 가장 주안점"이라고 피력했다.
윤석열 정부는 특히 자원과 식량 교환 방식으로 에스크로(결제대금예치) 계좌 활용을 검토 중이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지금 필요한 식량이나 의약품 같은 인도적 물품이 있을 텐데 그것을 지원받는 것보다 (북한이) 팔 수 있는 것을 팔고 제3자가 관리하는 에스크로 계좌를 만들어 판매 대금을 넣고 (인도적 물품을) 구입하면 그 계좌에서 대금이 빠져나가는 시스템을 만들어 보겠다"고 말했다. 이 고위당국자는 또 "이런 구상에 대해서는 (미국과) 다 협의한 것"이라며 "미국이 밝힌 입장은 '한국의 담대한 구상이 추구하는 목표, 방향, 원칙에 대해 우리가 강력히 지지한다. 세부 사항에 대해 긴밀히 조율해 나가자'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에스크로 계좌 활용은 미국의 대북 독자 금융제재 등에 저촉될 수 있어 미국의 동의가 필요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