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주요 국가들이 첨단산업 경쟁력 확보에 사활을 건 가운데 최전방 산업 지원의 중추를 담당해야 할 국회가 정쟁으로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미국·유럽연합(EU)·일본 등이 각종 법안을 쏟아내며 정부와 한몸이 돼 지원책을 마련하는 반면 한국 국회는 여야가 쪼개져 법안 통과는 물론 논의조차 지지부진하다는 지적이다.
18일 국회와 정부에 따르면 반도체·배터리·전기자동차·디스플레이 등 국내 기업들이 주력으로 삼은 핵심 첨단산업에 대한 주요 법안들이 국회에서 답보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조속한 지원책 시행으로 성장 동력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지만 여소야대 국회는 이렇다 할 논의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다. 정부는 국회의 협조를 구하기 어려워 시행령 개정 등 우회로를 택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유럽·일본 등 경쟁국들은 정부와 의회가 보조를 맞추면서 강력한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 의회는 이달 중국과의 경쟁 우위 확보, 국가 안보를 위한 첨단 전략산업 지원을 위해 ‘인플레이션감축법’ ‘반도체산업육성법’ 등을 잇달아 통과시켰다. 인플레이션감축법의 경우 7일 상원을 통과한 뒤 12일 하원 통과, 16일 대통령 서명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일본 의회는 5월 참의원(상원) 본회의에서 반도체 공급망 강화, 첨단 기술 보호 등을 위한 ‘경제안보법’을 의결했다. EU는 2030년까지 430억 달러를 지원하는 ‘반도체법안’ 제정을 추진 중인데 유럽의회에서 조속한 처리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이른 시일 내 통과가 기대된다.
반면 한국은 정부가 전문 인력 15만 명 육성 등을 내건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을 발표하는 등 지원 의지를 다지고 있지만 국회의 뒷받침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일례로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 해제의 경우 법 개정을 통한 문제 해결이 불가능에 가깝다 보니 정부는 계약정원제 도입 등 ‘우회로’를 택했다. 반도체 팹 신증설 시 용적률 특례 등 각종 지원책은 시행령을 개정하는 식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첨단산업 지원 논의에서 국회는 사실상 활동을 멈춘 상태다. 국민의힘은 삼성전자 출신의 반도체 전문가 양향자 의원을 영입해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를 운영하고 있지만 다수당인 야당의 협조를 얻지 못해 제대로 된 지원책 마련을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본부장은 “각국이 첨단산업의 헤게모니를 쥐기 위해 경쟁하는 상황에서 국회가 전폭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며 “여야가 경제 문제에서만큼은 정쟁보다 통합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