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꽂이] '유럽의 철도망' 과신했던 열강들…속도전 외치며 1차대전 일으켰다

■기차 시간표 전쟁

A. J. P. 테일러 지음, 페이퍼로드 펴냄

산업혁명으로 철도 빠르게 발달

총동원 쉬워지고 무기도 강해져

단기전 판단한 전쟁 되레 장기화

사망자 1500만명 대참사 불러

우크라 전쟁·G2 신냉전 등 직면

오늘날 지도자 반면교사 삼아야





1914년 시작돼 1918년 끝난 제1차 세계대전은 1500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낳은 참혹한 전쟁이었다.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쳤고, 전쟁이 끝난 후 100여년이 넘도록 발생 원인과 과정, 결과와 영향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어 왔다.



역사학자 A.J.P. 테일러는 1969년 발표한 저서 ‘기차 시간표 전쟁’을 통해 전쟁의 원인에 관한 새롭고 도발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기존의 연구들이 유럽 열강들 간의 패권 경쟁·사라예보 사건·독일의 군비 증강에 대해 초점을 맞췄던 데 반해, 테일러는 ‘기차 시간표’로 대표되는 산업혁명과 그로 인한 기술 발전·사고 방식의 변화에 집중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유럽은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 산업혁명은 문명을 발전시켰고, 삶을 풍요롭게 했다. 테일러는 이 시기에 대해 “확실성과 그에 따른 안전이 쭉 지속되리라는 믿음이 있던 시기”라고 말한다. 프랑스·영국·러시아·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 6개국은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아무도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전쟁을 준비한다면 그것은 방어전이나 예방을 위한 것이었다.



사라예보 사건이 일어났을 때까지도 각국은 전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혹은 열리더라도 단기에 그칠 것이라고 여겼다. 독일이 오스트리아-세르비아 전쟁에 개입한 것은 세력 확대의 목적 때문이라기보다는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프랑스·러시아와의 양면 전쟁이 두려웠던 독일은 슐리펜 계획에 따라 속도전을 펼쳤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유럽에 깔린 철도망으로 동원 계획이 용이해졌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그러나 전쟁을 빨리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독일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열강들도 기차를 통한 빠른 동원이 가능해진 탓이다. 이는 ‘총동원’과 ‘총력전’의 개념을 현실화했다. 인력 동원이 쉬워지고, 무기의 발달로 살상 능력이 늘어나며 전쟁은 장기화됐다. 개전 초기 단기 종전을 자신하던 열강들은 지루한 참호전에 들어갔다.

요컨대, 테일러는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술 발달과 이를 맹신한 지도자들의 오판과 실수가 세계대전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테일러의 연구는 발표된 지 50년이 지난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했고, 유럽과 러시아의 갈등은 고조되고 있다. 나토는 군사력 강화를 선언했고, 독일도 재무장에 나섰다. 미국과 중국은 신냉전 패권 경쟁 중이며, 최근에는 대만 문제로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치달았다. 일본은 이지스함에 장거리 미사일 장착을 추진하는 등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국가 간 억제는 항상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들의 오판과 실수는 국제적 긴장과 군비 경쟁이 고조된 상태에서는 필연적으로 전쟁을 야기한다. 역사는 반복되고, 인류는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해 왔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역사에게서 교훈을 얻는 것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제1차 세계대전은 기관총과 화염방사기·경전차·공군이 등장한 최초의 전쟁이었고, 1500만 명에 달하는 사망자를 냈다. 인구가 20억 명에서 80억 명으로 늘었고, 핵무기 등 무기의 살상력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지금 전쟁이 난다면 얼마나 많은 피해가 발생할 지는 상상조차 어렵다.

그런 점에서 테일러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새겨 들을 필요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에 관해서 더 이상 밝혀져야 할 것은 없다. 억지책으로도 억지에 실패한 것이다. 언젠가는 그럴 것이라 생각했어야 했다. 억지책은 아흔아홉 번 성공하더라도 한번 실패할 수 있다. 그 한 번의 실패로 대참사가 빚어진다. 억지책을 찾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 제1차 세계대전이 남긴 교훈이다.” 1만 6800원.


한순천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