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유방암 병변 97% 잡아내는 'AI 전임의', 유럽 이어 美문턱도 넘었다 [다시 기업을 뛰게 하자]

3부- 혁신 현장을 가다

< 7 > 스마트 의료시장 선도 용인세브란스병원

7년 연구 끝 루닛과 유방암 진단 AI 개발…병원 200곳서 활용

전임의 수준 판독능력…의료신뢰도 높이고 환자 삶의질 향상

통합반응상황실 갖춰 중증·응급·입원환자 실시간 모니터링도

김은경 용인세브란스병원장이 루닛의 인공지능(AI) 진단 보조 솔루션을 활용해 환자의 X선 촬영 영상을 분석하고 있다. 사진 제공=용인세브란스병원김은경 용인세브란스병원장이 루닛의 인공지능(AI) 진단 보조 솔루션을 활용해 환자의 X선 촬영 영상을 분석하고 있다. 사진 제공=용인세브란스병원




19일 오후 경기도 용인 기흥의 용인세브란스병원. 김은경 용인세브란스병원장(영상의학과 교수)이 이날 오전 유방촬영술(mammography)을 시행한 환자의 영상을 판독하고 있다. 제일 왼쪽 모니터의 전자의무기록(EMR)에서 환자의 병력을 확인한 김 원장의 시선이 다른 2대의 모니터 속 유방 영상으로 향한다. 가장 오른쪽 모니터에는 좌측 유방 조직 3곳이 초록색으로 표시돼 있다. 이는 김 원장이 의료 인공지능(AI) 기업 루닛(328130)과 함께 개발한 유방암 진단 보조 시스템 ‘루닛 인사이트 MMG’를 진료 현장에서 활용하고 있는 장면이다.



루닛 인사이트 MMG는 유방 촬영기로 찍은 영상을 인공지능(AI)으로 실시간 분석해 의료진의 판독을 돕는다. 유방암 의심 병변을 97%의 정확도로 검출해 위치를 표시한다. AI가 판단한 유방암 존재 가능성을 확률 값으로 제시하고 판독자가 설정한 역치(threshold) 값에 따라 표시 색깔도 바꾼다. 오른쪽 화면의 영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녹색으로 표시된 부위 3곳에 각각 70·74·78%라는 수치가 보인다. 왼쪽 유방에 약 70~78%의 확률로 유방암이 의심되는 병변 3개가 존재한다는 의미다. 김 원장은 “의심 병변의 위치는 물론 비정상 가능성이 높은 사진부터 판독할 수 있어 효율적”이라며 “솔루션 도입으로 판독 시간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전했다.

진료 현장에 AI 기술을 활용하려는 시도는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미국의 인기 TV 퀴즈쇼 ‘제퍼디’에서 2명의 챔피언을 상대로 압승을 거둔 IBM의 슈퍼컴퓨터 ‘왓슨’이 이듬해 미국 뉴욕의 메모리얼 슬로언케터링암센터에서 레지던트(전공의)로 생활하며 폐암 환자 진료에 도전장을 냈다. MD앤더슨암센터 트레이닝을 거친 ‘왓슨 포 온콜로지’는 2016년 가천대길병원을 필두로 부산대병원·대구가톨릭대병원 등 국내 의료기관에 속속 도입되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불과 5년 새 왓슨이 치명적 한계를 드러내며 진료 현장에서 자취를 감췄고 국내 기술로 개발된 AI 진단 솔루션들로 대체됐다. 2019년 7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은 루닛 인사이트 MMG는 용인·신촌세브란스병원 등 주요 대학 병원을 필두로 국내 의료기관 200여 곳에 도입됐다. 2020년 6월 유럽 CE 인증에 이어 지난해 11월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획득하며 해외 시장에서도 실력을 인정 받았다. 김 원장은 “과거에 출시된 컴퓨터 보조 진단 제품은 암이 아닌데도 암으로 진단하는 위양성률이 너무 높아 현장 활용에 제약이 많았다”며 “조기 침윤성 유방암처럼 유방 촬영기만으로 발견하기 어려운 질환도 진단할 수 있는 AI를 개발하기까지 꼬박 7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수십만 건의 사례를 학습시켜 스스로 알고리즘을 만들게 한 뒤 검증하기를 수차례 반복한 결과 일반인 수준이던 판독 능력이 레지던트를 거쳐 펠로(전임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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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세브란스병원의 통합반응상황실(IRS)에서 근무자들이 대형 모니터를 살펴보고 있다. IRS는 응급 상황 발생 시 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용인세브란스가 국내 최초로 도입해 중증·응급 환자뿐 아니라 모든 입원 환자의 상황을 관리하고 있다. 사진 제공=용인세브란스병원용인세브란스병원의 통합반응상황실(IRS)에서 근무자들이 대형 모니터를 살펴보고 있다. IRS는 응급 상황 발생 시 조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용인세브란스가 국내 최초로 도입해 중증·응급 환자뿐 아니라 모든 입원 환자의 상황을 관리하고 있다. 사진 제공=용인세브란스병원


용인세브란스는 2020년 3월 ‘디지털 혁신’을 핵심 전략으로 내세우며 문을 열고 진료 현장 곳곳에서 5세대(5G) 기술 기반의 디지털 의료 시스템과 AI 기술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디지털의료산업센터를 주축으로 통합반응상황실(IRS)을 구축해 중증·응급 상황뿐 아니라 모든 입원 환자를 통합 관리한다. 위기의 순간 보호 받지 못하는 환자가 단 한 명도 발생하지 않도록 중증 환자 지표 모니터링 시스템과 실시간 위치 추적 시스템을 갖췄다.

흉부 방사선 영상 분야에는 주요 폐 질환 9가지를 97~99%의 정확도로 검출할 수 있는 '루닛 인사이트 CXR'을 도입했다. AI가 폐를 탐색해 이상 부위를 초록색으로 표시해주기 때문에 육안으로 판독할 때 놓치기 쉬운 폐암 의심 병변을 포착하고 추가 검사를 유도할 수 있다. 개원 당시 AI 친화적인 의료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을 구축한 덕분에 별도 툴 없이 바로 확인 가능하다. 김 원장은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의 기흉을 조기 진단해 치료하고 임상 증상이 없는 기복증도 조기에 발견해 응급수술한 사례도 있었다”며 “AI를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면 진단 효율과 정확도가 높아질 뿐 아니라 환자의 대기시간이 줄어들고 궁극적으로 삶의 질 향상으로도 이어진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최근 과학정보기술통신부의 의료 AI 바우처 사업을 통해 도입된 '뷰노(338220)메드 흉부CT AI'에도 큰 기대를 걸고 있다. AI를 기반으로 흉부 CT 영상에서 폐결절을 자동으로 탐지하고 임상적 판단에 중요한 폐결절의 종류·위치·지름·부피 등의 정보를 알려주는 솔루션이다. 김 원장은 “환자 1명당 1000장에 가까운 단층 사진을 일일이 확인하는 수고를 덜 수 있어 판독 시간이 대폭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환자들에게도 더 빠르고 정확한 결과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용인세브란스병원 병리과 의료진이 검체를 육안 검색한 내용을 뷰노의 자동음성인식(ASR) 인공지능(AI) 솔루션을 활용해 기록하고 있다. 사진 제공=용인세브란스병원용인세브란스병원 병리과 의료진이 검체를 육안 검색한 내용을 뷰노의 자동음성인식(ASR) 인공지능(AI) 솔루션을 활용해 기록하고 있다. 사진 제공=용인세브란스병원


AI 시스템은 의사들의 ‘잡무’를 줄여주는 ‘동료'이기도 하다. 김 원장도 외래 진료 등으로 바쁜 하루를 보낸 후 흉부 X레이, 유방 촬영술 같은 영상검사나 진료 관련 기록을 남기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여기에 최근 AI 기반 자동음성인식(ASR) 솔루션을 도입한 후 작업 시간이 크게 줄었다. 국내 의료 데이터 수만 건을 학습한 ‘뷰노메드 딥 에이에스알’이 국문·영문 의료 용어를 함께 말하거나 약어를 써도 오류 없이 문서화해주기 때문이다. 또 PACS·EMR 등 전자 의료 시스템에 탑재돼 있어 기록을 별도로 전송하지 않아도 되고 음성으로 실시간 수정도 가능하다. 김 원장은 “AI 등 혁신 기술을 도입하고 디지털 병원을 추진하는 목적은 환자를 잘 치료하고 의료진의 업무를 돕기 위한 것”이라며 “선진적인 첨단 의료 기술들을 적극 활용해 더욱 안전하고 신뢰받는 의료 현장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힘줘 말했다.


용인=안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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