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옛것 취급받는 국악, 변주로 새로움 찾아야죠"

'국악·재즈 결합' 4인조 크로스오버 그룹 블랙스트링

박물관 가는 신세 되지 않으려면

고유 정체성에 다양성 추가해야

자기 것에 대한 명확한 이해는 필수

獨·캐나다 공연 때마다 매진 행렬

르몽드 "가장 흥분되는 韓 그룹"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크로스오버 국악 밴드 ‘블랙스트링’. 타악 연주자 황민왕(왼쪽부터), 대금 연주자 이아람, 거문고 명인 허윤정, 기타리스트 오정수. 사진 제공=블랙스트링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크로스오버 국악 밴드 ‘블랙스트링’. 타악 연주자 황민왕(왼쪽부터), 대금 연주자 이아람, 거문고 명인 허윤정, 기타리스트 오정수. 사진 제공=블랙스트링




“거문고 없이 록 음악이 어떻게 65년을 견뎌왔는지 모르겠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흥분되는 그룹 중 하나.” “강력한 비트 속에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음악 언어를 창조하고 장르와 시간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존재.” 프랑스 르몽드를 비롯한 해외 언론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는 이들은 아이돌도, K팝도 아닌 4인조 크로스오버 국악 밴드 ‘블랙스트링’이다.



거문고 명인 허윤정 서울대 교수를 중심으로 대금 연주자 이아람, 타악 연주자 황민왕, 기타리스트 오정수로 구성돼 2011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블랙스트링은 한국보다 해외에서 훨씬 더 유명한 밴드다. 영국·독일·스페인·캐나다 등 다른 나라에서 공연하면 언제나 매진 행렬을 이룬다. 경력도 화려하다. 2017년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린 월드뮤직엑스포(WOMEX)에서는 관행을 깨고 개최국 대신 공식 쇼케이스를 장식하는가 하면 2018년 영국 송라인스 뮤직어워즈에서 한국 음악가로는 처음으로 아시아&퍼시픽 부문을 수상했다.

블랙스트링은 국악과 재즈의 결합을 추구하는 밴드다. 만약 블랙스트링이 악보대로 연주하기를 원했다면 재즈가 아닌 클래식과의 결합을 시도했을 것이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달랐다. ‘악보대로’가 아니라 변주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완성해 나가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여러 문화를 흡수하면서 뛰어난 즉흥성을 갖게 된 재즈야말로 안성맞춤일 수밖에 없다. 기타리스트 오정수가 이 밴드에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만난 블랙스트링의 허 교수는 "한번은 뉴욕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너무나 다양한 즉흥연주가 이뤄지고 있더라.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신세계”라며 “이미 타악 공연에서 변주의 쾌감을 많이 느꼈던 탓에 나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크로스오버 국악 밴드 '블랙스트링'. 기타리스트 오정수(왼쪽부터), 타악 연주자 황민왕, 거문고 명인 허윤정, 대금 연주자 이아람. 사진 제공=블랙스트링크로스오버 국악 밴드 '블랙스트링'. 기타리스트 오정수(왼쪽부터), 타악 연주자 황민왕, 거문고 명인 허윤정, 대금 연주자 이아람. 사진 제공=블랙스트링



블랙스트링에 크로스오버는 선택이 아니다. 그 자체로 본질이다. 사실 국악도 우리 민족의 전통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 영향을 받았고 불교적 색채도 띠는 데다 유교 사상까지 접목돼 있다. 그뿐이랴. 양반과 평민·천민의 시선도 녹아 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전통과 결합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이고 본능이라는 지적은 허언이 아니다. 전통과 크로스오버가 떨어질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허 교수는 “국악이 박물관에 가는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새로운 음악을 계속 만들어야 한다”며 “우리 음악을 절대 보존의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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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오버가 다른 음악과의 무조건적인 결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악의 정체성을 그대로 가지고 또 다른 다양성을 찾아가겠다는 것이다. 블랙스트링 구성원 중 양악기가 기타 하나뿐인 것도 이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 것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엉뚱한 것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자기 것을 명확히 알면 약점과 강점을 볼 수 있고 양보해야 할 것과 밀어붙여야 할 것이 명확히 보입니다.” 블랙스트링 멤버들의 공통적인 목소리다.

계명국(왼쪽부터) 감독과 기타리스트 오정수, 거문고 명인 허윤정이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송영규 선임기자계명국(왼쪽부터) 감독과 기타리스트 오정수, 거문고 명인 허윤정이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송영규 선임기자


그렇다고 정체성을 너무 강조하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장애가 될 수밖에 없다. 핵심은 국악과 재즈를 어떻게 하나로 묶어 ‘음악 그 자체’로 풀어내는가 하는 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크로스오버 밴드는 ‘경계가 없는 음악’을 주창한다. 블랙스트링을 탄생시킨 계명국 프로듀서 겸 감독은 “국악은 안 팔린다는 선입견이 존재하는 국내에서는 우리를 보고 한국 음악의 새로운 시도라고 표현하지만 해외에서는 한국 음악 그 자체로 본다”며 “이제는 우리를 소개할 필요가 없게 됐고 그로 인해 우리의 음악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허 교수도 “기존에는 새로운 시도, 기존 크로스오버가 보여주지 못한 것들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지금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구성원 각자가 좋아하는 다양한 음악과 관심을 끌어내 새로운 음악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가 최대 관심”이라고 소개했다.

해외 진출을 노리는 다른 크로스오버 팀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오정수는 “외국에서도 가야금·소금·대금에 대해 안다. 한국에 대해 신기해하던 시기는 이미 지났다”며 “의도보다는 자기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본질적인 것을 추구해야 한다. 음악을 들으면 마음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송영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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