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시로 여는 수요일]어떤 풍경


- 이진흥


당신이 산이라면 나는 강, 나는 당신을 넘지 못하고 당신은 나를 건너지 못합니다. 천년을 내게 발을 담근 채 당신은 저 건너에만 눈길을 두고, 만년을 당신 휩싸고 돌며 나는 속으로만 울음 삭였습니다. 그렇게 세월 지나 당신의 능선 위로 별빛 기울고 나의 물결 위로 꽃잎 떨어져 당신은 죽고 나도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주검 돌아보니 산은 첨벙첨벙 강 속으로 들어가고 강은 찰랑찰랑 산의 허리 감싸 안고 흘러갑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슬픔도 그리움도 모두 잊어버리고 푸른 하늘 너울너울 날아다니는 새들 바라보며 골짜기에 보얗게 안개 피워 올리는 그런 풍경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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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같은 줄 알고 사랑에 빠졌다가, 서로 달라서 다투곤 하죠.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죠. 서로 달라서 나와 당신이라는 걸. 천년 동안 저 건너 눈길 주고, 만년 동안 속울음 울다니 강산의 연애는 아픔이 길기도 하군요. 산에 대한 별 같은 기대와 강물에 대한 꽃 같은 바람을 떨궈버리자 둘은 비로소 풍경이 되었군요. 내가 넘지 못해서 높은 당신, 당신이 건너지 못해서 깊은 나를 알게 되었군요. 당신이 높이를 허물고, 내가 깊이를 메워서 하나가 되면 아득한 사막이 되는 걸 아셨군요. 높이가 곧 깊이인 걸 알고, 산은 더 우뚝하고 강물은 더 깊게 굽이치는군요.

-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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