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30주년을 맞은 24일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친필 서한을 교환하며 양국 관계의 발전을 약속했지만 메시지와 행보에서 복잡한 한중 관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왔다. 서울과 베이징에서 각각 열린 공식 기념 행사에서 윤 대통령과 시 주석은 ‘상호 존중과 협력’ 메시지를 주고받았지만 박진 외교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겸 국무위원이 참석해 양국 정상 축사를 대독한 것 자체가 한중 관계의 변화상을 반영했다는 해석이다. 2016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이후 반중·반한 정서가 강해진 상황에서 미국 주도의 반도체 협의체 칩4 가입과 사드 추가 배치 등을 두고 형성된 양국의 긴장감이 반영된 셈이다.
외교가에서는 왕 부장이 중국을 대표하는 인사로 참석하는 것은 그동안의 관례상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주중 한국대사관도 최소한 부총리급인 정치국 위원 25명 중 한 명의 참석을 기대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통상적으로 자국에서 열린 수교 기념 행사에 부총리급 인사를 보내왔다. 2012년 수교 20주년 행사에도 시진핑 당시 국가 부주석이 주석으로 사실상 내정된 상태에서 깜짝 참석해 화제가 됐을 만큼 양국의 기대 수준이 높았다. 2017년에 열린 25주년 기념식에는 완강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이 참석했다. 지명도나 영향력은 낮았지만 한국의 사드 배치 이후 얼어붙은 양국 관계를 감안하면 중국이 최소한의 예우를 갖췄다는 평가가 나왔다. 반면 이번 30주년 기념식에는 장관급인 왕 부장이 주빈으로 참석해 한 급을 낮춘 인사 참석이 됐다. 이상만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카운터파트너가 총리나 부총리 정도가 돼야 했지만 중국에서 왕 부장이 대표로 나오다 보니 한국도 박 장관이 대표로 나간 것”이라며 “양국 간의 변화가 보이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미중 전략 경쟁 속에 한국의 사드 문제를 고리로 원만하지 않은 한중 관계가 노출된 것이라는 진단이다. 왕 부장이 대독한 시 주석의 친필 서한은 “대변혁과 세기의 팬데믹(코로나19)이 교차하는 중대한 시기에 한중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단결,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과의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이 같은 메시지는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경계감을 드러낸 것으로 특히 가치 외교에 방점을 찍은 윤석열 정부의 외교정책을 간접적으로 지적한 셈이다.
중국 관영 언론을 통해서도 어색해진 한중 관계의 분위기는 여실히 드러났다.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이날 “한중 관계에서 가장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은 사드 문제의 재부상”이라며 “일부 중국 전문가들은 양국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려면 사드 배치와 같은 문제는 피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보도했다. 중국 정부 관계자도 마찬가지였다. 한팡밍 정협 외교위원회 부주임은 인민정협망에 올린 글에서 “중미 양 대국 사이에서 한국의 일부 인사들의 마음은 동요하고 있다”며 “중한 관계 발전의 관건은 독립 자주와 상호 존중”이라고 강조했다. 사실상 한국이 미국 주도의 안보·경제 동맹에 참여하는 것을 직접 겨냥한 비판이었다.
다만 한국 정부는 중국에 사드는 안보 주권의 문제라는 입장을 확고하게 전달하겠다는 입장에 변화가 없다. 양국의 관계 발전에 또 사드가 ‘걸림돌’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공유했다는 점도 분명히 하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3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양국 관계는 상호 가장 중요한 관계라고 할 수 있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까지 발전했다”고 한중 갈등에 대한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한중 관계 미래발전위원회의 공동 보고서에 기대를 거는 모습도 보였다. 해당 보고서는 한중 국민 간 우호적인 정서 교류 등 신뢰 회복을 우선으로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날 양국은 1년여 동안의 미래발전위 논의 결과를 보고하며 사드 문제 등으로 한중 상호 간에 인식이 악화된 상황을 개선하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역점을 뒀다. 위원회는 △한중 정상 간 대화 △외교·안보 라인 간 전략적 소통 강화 △새로운 무역·투자 환경에 따른 경제협력 모델 검토 필요성 등을 제안했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한중 관계의 모멘텀을 찾아야 한다”며 “사드나 북한 문제 등에 얽혀 있는 것과 달리 한중 간 상호 인식의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