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내 최초의 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착공을 시작으로 사용 후 핵연료 처리 문제를 위한 로드맵을 본격 가동한다. ‘탈원전 폐기’를 내건 윤석열 정부가 해외 원전 수주 확대를 통해 원전 생태계 복원에 힘을 쏟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방사성폐기물 관리 정책도 한층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26일 경주 한국원자력환경공단에서는 국내 최초의 저준위 방폐물 처분을 위한 2단계 표층처분시설 착공식이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직접 참석했다. 한국수력원자력이 3조 원 규모의 이집트 엘다바 원전 건설 프로젝트 수주 계약을 체결한 다음날이었다.
이번에 건설되는 2단계 표층처분시설은 국내 최초의 저준위 이하 방폐물 처분시설로 200ℓ 기준 드럼통 12만 5000개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앞서 2014년 완공된 1단계 동굴처분시설은 지하 130m 수직 동굴에 방폐물을 쌓아두고 관리하는 것으로 드럼통 10만 개를 보관할 수 있다.
2단계 표층처분시설은 2015년 건설 인허가 신청 후 이듬해인 2016년 발생한 경주 지진을 계기로 규모 7.0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5중 다중 차단 구조로 내진 성능을 강화한 것이 특징이다. 지난달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건설 허가를 획득했다. 2024년 완공을 목표로 총사업비 2621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이 장관은 이날 착공식 축사를 통해 “1단계 동굴처분시설의 건설·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2단계 표층처분시설도 ‘국민 안전’을 최우선에 놓고 건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고준위 방폐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원전의 혜택을 누린 현 세대의 의무이자 책임인 만큼 고준위 방폐물 처분시설 확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며 “고준위 방폐물 관리특별법을 제정하고 연구개발(R&D) 기술 로드맵을 통해 관련 기술을 확보하는 한편 해당 기술을 활용한 수출시장 개척까지 나서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친(親)원전’을 표방하면서 방폐물 처리시설 확보는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원전의 가동률을 높이고 다시 신규 원전 건설에 나설 경우 그만큼 방폐물 발생도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전에 대한 부정적 인식 탓에 지역 주민 반대 등에 부딪혀 방폐물 처리시설 건립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반면 해외 주요국들은 처리시설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핀란드는 2025년 고준위 방폐물 처분시설을 운영할 예정이며 스웨덴도 2035년까지 관련 시설 건설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이 장관은 이날 월성원자력본부도 방문해 고준위 방폐물 건식저장시설(맥스터)과 신월성 2호기의 주제어실 및 습식 저장조 등을 살펴보고 운영 현황을 점검했다. 이 장관은 이날 체코·폴란드 원전 수주 전망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가장 가까운 시기에 수주 가능성이 있는 나라들”이라면서 “두 나라 모두 한국 원전에 상당히 호의적이어서 낙관할 순 없지만 수주 전망은 밝다”고 설명했다. 또 필요하면 경쟁국 기업들과 협력해 참여하는 방법도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