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복합 위기가 점차 거세지자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005930)가 내부 미집행 사업을 일부 보류·축소하고 나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 복귀를 기점으로 불필요한 지출은 줄이고 필요한 사업에만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경영에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내부적으로 예산만 잡아놓고 집행하지 못한 팀별 사업 상당수를 줄이거나 보류하고 있다. 이 가운데는 이미 경영진의 결재를 받은 사업 과제들도 포함됐다는 후문이다.
특히 상반기 대내·외 경영 환경이 악화하면서 삼성전자가 멈춘 사업 예산 규모는 예년보다 더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불필요한 지출을 감축해 대형 투자에 집중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체적인 투자와 고용 규모는 유지하면서 경영 효율성을 높이려는 전략이 아니냐는 진단이다. 금리 인상, 환율 급등, 경기 둔화, 반도체 업황 하락 등 글로벌 경영환경이 비우호적으로 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삼성전자가 비상경영에 준하는 선제 대응에 나서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삼성에서는 이 부회장이 유럽 출장에서 복귀한 직후인 지난 6월 20일 전자 계열사 사장 25명이 한 자리에 모여 비상경영을 선포한 바 있다. 스마트폰·메모리·시스템반도체 등 기존 사업의 미래 성장성이 불투명해지면서 정신 재무장에 나선 것이다. 삼성전자와 관계사 경영진이 총출동한 것은 2017년 2월 그룹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5년 만에 처음이었다. 비상경영 회의는 무려 8시간이 넘는 ‘마라톤 회의’로 진행됐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한 최고경영자(CEO)는 “고(故)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에 준하는 강도 높은 혁신 얘기가 오갔다”고 전했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2016년 수준에 머물러 있고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 실적은 여전히 대만 TSMC와 격차가 큰 상태다.
여기에 이 부회장의 최근 복권을 계기로 강도 높은 조직문화 개선, 사업 구조 재편 등을 포함한 ‘뉴삼성’ 구상이 조만간 공표될 것이란 예상도 곳곳에서 나온다. 큰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이 부회장이 경영 일선으로 돌아온 만큼 실탄을 더 아껴 미래 먹거리 준비에 쏟아부을 여지가 더 커졌다는 얘기다. 이번에 삼성전자가 중단한 사업 가운데에는 인수합병(M&A), 생산시설 증설 등 대형 투자 프로젝트는 제외됐다.
삼성전자 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올 6월 말 기준 이 회사의 현금성 자산은 125조 3523억 원에 달한다. 이 회사는 지난 5월 24일 “앞으로 5년간 국·내외에 450조 원, 국내에만 36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