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대통령이 집권 여당의 연찬회에 참석하는 것은 보기 드문 광경이다. 시점도 미묘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내부 총질’ 문자가 공개돼 한바탕 홍역을 겪은 뒤 권성동 직무대행 체제가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되는 과정을 놓고 논란이 진행형이던 때다. 무엇보다도 이준석 전 대표가 법원에 낸 비대위 전환의 효력 정지 처분 판결을 눈앞에 뒀던 시기였다.
기각이냐 인용이냐 따라 국민의힘은 발칵 뒤집힐 수도 있는데도 윤 대통령은 연찬회에 함께했다. ‘기각’에 상당한 무게를 뒀다는 얘기다. 의원 100여 명과 각 부처 장차관 40여 명 등이 모인 자리에서 당정이 ‘원팀’을 외치며 분란도 봉합하고 국정 운영의 동력을 높이는 게 낫다는 정치적 계산도 작용했으리라.
현실은 바람과는 달랐다. 연찬회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법원으로부터 날아온 결과는 이 전 대표의 사실상 완승(完勝). 여당은 벌집을 쑤신 듯했고 대통령실도 난감한 표정이 역력했다.
정부 여당 내 한 관계자는 “현직 대통령을 연찬회에 처음 참석시킨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법원의 가처분 결과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나 플랜B도 없이 밀어붙이면서 결과적으로는 대통령에게 또 다른 족쇄를 채운 꼴이 됐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의 움직임 하나하나는 고도의 정치 행위인데 결과적으로는 당이나 대통령실이 행동만 앞섰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은 현직 대통령이 국정 농단으로 탄핵을 당한 짐을 지고 있다. 정당이 존폐의 위기에 놓일 정도로 상처는 크고 깊었다. 대선 승리로 5년 만에 되찾은 여당의 지위는 국민의힘으로서는 정말 값졌을 것이다. 하지만 집권 여당이 국민에게 보여준 모습은 ‘수권 정당’의 실력이 있는지를 걱정할 정도다. 대선을 함께했던 젊은 당 대표와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부터 싸움의 연속이다. 총선 공천권을 누가 쥐느냐가 그 기저에 깔려 있다. 심지어 소위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마저 분열돼 이제는 ‘○○핵관’들이 양산되고 있다. 집권 60개월 중 4개월이 채 지나지 않는 정부인데도 권력을 탐하려는 ‘십상시’만 넘치는 꼴이다.
권력을 쥐여준 국민의 형편은 안중에도 없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의 ‘다중 위기’ 앞에서도 말의 성찬만 넘칠 뿐이다. 협치로 정치를 바로 세우고 국민의 정치를 걱정하지 않도록 해 달라는 바람은 허공 속으로 날아간 지 오래다.
집권 여당을 향한 여론은 그래서 싸늘하다. 대선 직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각각 37%와 34%(갤럽 정기 조사)였다.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하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5월 2주에 국민의힘은 45%의 지지로 민주당(31%)을 크게 앞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분으로 자멸하면서 8월 4주 지지율은 민주당 36%, 국민의힘 35%로 원점 수준으로 돌아갔다.
폭주 기관차와 같은 권력 다툼에 급기야 정당으로서는 치욕의 상황까지 겪었다. 법원은 ‘민주주의의 요체인 정당의 결정이 당원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정당 민주주의에 맞지 않다’는 골자로 판결을 내렸다. 정상적인 정당이라면 “부끄러워 하늘을 볼 수 없다(정당 내부자)”는 반응이 나와야 한다. 정당정치가 곧 민주주의의 생명이고 근간인 탓이다.
국민의힘은 그러나 법원과 맞서기로 했다. 사과와 반성, 쇄신보다는 부정당한 비대위를 다시 꾸리기 위해 당헌·당규 등을 정비하고 절차를 또 밟겠다는 것이다. 비대위 자체가 꼼수라는 판결인데, 그 해결 방안으로 다시 꼼수를 꺼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사정은 이해한다. 위기를 수습할 주체가 제한적인데 원내대표마저 손을 떼면 혼란은 더 극심해질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정당은 민주적이어야 하고 절차도 정당해야 한다. 정공법으로 가는 게 맞다. 새 비대위마저 사법의 잣대에 기댈 것인가.
연찬회에서 강사로 나선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어렵게 찾아온 정권을 성공시키기 위해 무슨 고민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 하루하루 서로 싸우는 집단은 목표가 없는 집단”이라며 쓴소리를 했다고 한다. 꼼수는 잠시다. 수술보다는 진통제 처방만 남발하면 정당은 사라진다. 수권 능력을 상실한 정당이 존립 가치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