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러시아인의 유럽 관광 제한 논의에 착수했다. 전쟁이 6개월 넘게 지속되는 상황에서 러시아인들이 유럽 국가들을 자유롭게 여행하도록 허용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동·북유럽을 중심으로 전면적인 비자 발급 중단 및 입국 제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반면 독일 등은 전쟁의 대가를 러시아 민간인에게 치르게 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여 고강도 제재가 도입될지는 미지수다.
28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 외무장관들은 30~31일 체코 프라하에서 만나 EU와 러시아가 2007년 체결한 비자 간소화 협정 중단 여부를 논의할 계획이다. 협정이 중단되면 앞으로 러시아인에 대한 EU 비자 발급이 훨씬 까다로워져 관광 목적의 유럽 방문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의 위협을 크게 느끼는 동·북유럽 국가들은 이미 독자적으로 비자 발급 중단 및 입국 제한 조치를 도입한 상태다. 체코·폴란드는 전쟁 발발 직후 비자 발급을 중단했고 에스토니아도 최근 솅겐 비자를 소지한 러시아인의 입국을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서방의 제재로 항공길이 막히자 EU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솅겐 비자를 지닌 러시아인들이 육로로 유럽 여행을 하는 사례가 부쩍 늘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인 경유객이 급증한 핀란드 역시 대러 관광비자 발급을 10% 수준으로 줄이기로 했다. 이들 국가는 비자 간소화 협정 중단에서 한발 더 나아가 솅겐 조약의 국가안보 관련 조항을 이용해 관광비자를 가진 러시아인의 입국까지 거부하는 방안도 EU에 제안했다. 가브리엘류스 란즈베르기스 리투아니아 외무장관은 “EU 차원의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면 러시아 관광객의 영향을 크게 받는 국가들끼리 (관광 제한) 협정을 맺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일부 국가들은 러시아 민간인에 대한 제재인 전면적 비자 발급 중단에 회의적이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 전쟁은 러시아 국민이 아니라 블라디미르 푸틴의 전쟁”이라고 말했다. FT는 “민간인에 대한 비자 발급 중단은 ‘서방이 러시아를 무너뜨리기 위해 제재를 가한다’는 러시아 정부의 주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며 “온건한 러시아인도 EU에 등을 돌릴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