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의 신’으로 불렸던 이나모리 가즈오(사진) 교세라 명예회장이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나모리 회장은 이른바 ‘아메바 경영’을 도입해 교세라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워내고 파산한 일본항공(JAL)을 단기간에 흑자 전환시켜 일본 경영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30일 이나모리 회장이 노환으로 24일 오전 교토 시내 자택에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가고시마현립대 공학부를 졸업한 후 회사원으로 일하다 27세인 1959년에 자본금 300만 엔으로 교토세라믹(현 교세라)을 설립했다. 창업 당시 교세라의 종업원은 28명이었다.
교세라가 현재 종업원 8만 3000여 명, 매출 1조 8400억 엔(약 17조 9000억 원) 규모의 세계적인 전자·정보기기 대기업으로 성장한 데는 이나모리 회장 특유의 경영 방식이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기업을 10명 이하의 소집단(아메바)으로 재편하는 아메바 경영을 도입해 직원들이 자신의 성과를 명확히 인지하도록 함으로써 노동시간 단축, 매출 증가를 꾀했다.
1984년에는 일본 제1이동통신사인 NTT가 통신 사업을 독점하는 데 문제의식을 느끼고 다이니덴덴(DDI)이라는 장거리 전화 회사를 설립했다. DDI는 이후 합병을 거쳐 현재 일본 2위 이동통신사인 KDDI로 거듭났다.
2005년 교세라 이사에서 퇴임하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그를 다시 불러낸 것은 일본 정부였다. 일본항공이 방만 경영의 여파 등으로 파산하자 2010년 민주당 정권은 팔순을 앞둔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 무보수로 임한 이나모리 회장이 대규모 구조 조정을 단행한 결과 일본항공은 이듬해 흑자 전환하고 2012년 도쿄 증시에 재상장했다.
이나모리 회장은 좌우명인 ‘경천애인(敬天愛人, 하늘을 숭배하고 인간을 사랑하다)’에 걸맞게 기업 경영에서도 사회적 책임을 역설했다. 1983년에는 중소기업 경영자에게 경영 비법을 전수하는 교육기관을 설립해 말년까지 세계 각지에서 강연을 했다. 1984년에는 이나모리재단을 설립하고 이듬해 ‘교토상’을 창설해 첨단기술·기초과학·예술 분야에 공헌한 이들에게 상을 수여해왔다.
그는 세계적인 원예육종 학자인 우장춘 박사의 4녀 아사코 씨와 결혼해 3명의 딸을 두는 등 한국과도 인연이 있다. 박지성이 2000년 일본 J리그 교토 퍼플상가에 진출할 때 이 팀의 메인스폰서가 교세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