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빈국에서 선진국으로.” 최근 글로벌 관심사인 ‘2030년 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전에 나선 부산시가 부산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공식 팸플릿 첫 장에 나오는 말이다. 지금은 ‘선진국’이 맞다. 하지만 부산과 우리나라의 시작을 ‘최빈국’으로 상정하는 것은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부산시나 부산관광공사 등에서 최근 부산을 소개할 때 주요 아이템들은 시대적으로 한국전쟁 이후로 돼 있다. 위 팸플릿의 첫 사진은 1961년 ‘미국 원조 물품 부한 입항 장면’이다. 이외에도 부산은 ‘피란수도 유산’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부산이 각고의 노력을 통해 선진국이 된 과정에 대해 자부심을 갖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문제는 정책 당국이 갖는 몰역사성이다. 현재 선진국을 강조하기 위해 과거를 지나치게 비하한다. 이미 부산은 전통 시대에도 중요한 도시였고 한반도와 해양 국가들을 잇는 관문이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중요성이 더 커졌을 뿐이다. ‘무’에서 ‘유’가 나온 것은 아닌 셈이다.
부산의 역사는 기원후 1세기 가야 시대까지 소급된다. 나중에 김수로왕의 부인이 되는 허 왕후는 인도에서 바닷길로 왔다고 한다. 이야기 자체의 사실성은 확정할 수 없지만 금관가야인 지금의 김해가 국제적인 항구였던 것만은 분명하다. 당시 항구는 지금 서부산으로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온 지역이다.
부산항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일본으로 가는 주요 루트였고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제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항구 도시가 됐다. 이는 수천 년의 역사를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재(문화유산)는 중요한 관광 자원이다. 과장할 필요도 없지만 자기 부정을 해서는 안 된다. 흥망성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민족이나 국가나 마찬가지 현상이다.
서울의 역사도 마찬가지다. 서울 남산한옥마을에는 타임캡슐이 묻혀 있는데 1994년에 서울시가 정도(定都) 600년을 기념해 만든 것이다. 600년 전의 의미는 1394년 이성계가 개경(지금의 개성)으로부터 조선의 수도를 옮긴 것을 기준으로 한다.
최근 청와대 개방으로 청와대 유래가 강조되면서 이곳 부지가 고려 부수도 남경(남쪽 수도)의 행궁이 있었음이 강조됐다. 남경 행궁은 1067년 지어졌다. 이를 감안하면 서울의 역사는 900년이 넘는다. 백제 수도 시기까지 합치면 2000년 동안의 역사를 겪은 것이 서울이다.
/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