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10년 끈 '론스타 분쟁' 누구도 개운치 않은 결말…'2라운드' 돌입하나

외환銀 매각지연은 양측 모두 책임 판정

ICSID "한국 정부 2800억 지급하라"

"韓 책임, 전혀 인정 안돼" 소수의견도

'판정 취소신청' 기대거는 우리 정부

한동훈 "국민 세금 한푼도 유출 안돼"

진행 중인 ISDS 사건 총 6건…4건 종료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우리 정부 간에 투자자·국제분쟁해결(ISDS) 사건이 10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지만, 양측 모두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론스타는 주장 대부분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우리 정부는 3000억 원이 넘는 혈세가 투입될 수 있다는 부담을 안게 됐다. 다만 우리 정부로서는 “배상 책임이 전혀 없다”는 소수의견도 나온 만큼 ‘2라운드’에 승부를 걸어볼만하다는 기대감을 품고 있다.


10년 끈 론스타 소송…투입된 혈세 3500억 원 육박


1일 법무부에 따르면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의 론스타 중재판정부는 2 대 1의 다수 의견으로 금융 제재에 대한 론스타 측의 주장 일부를 받아들였다. 그중 1명은 “금융 당국의 승인 심사는 정당했다”는 취지로 한국 정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소수 의견을 내놓았다.

이번 판정에 따라 우리 정부는 론스타에 2억 1650만 달러(약 2800억 원, 환율 1300원 기준)와 지연이자 185억 원 등 약 2985억 원의 배상금을 지급하게 됐다. 여기에 정부가 쓴 변호사 보수 등 중재 비용 478억 원을 포함하면 3500억 원에 가까운 국민 혈세가 투입된 셈이다. 론스타의 청구액 46억7950만 달러(약 6조 1000억 원) 중 4.6% 수준인 배상금만 인정됐다는 점에서 선방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애초에 지급할 이유가 없는 돈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점에서 정부는 완전 승소를 위해 선고 취소와 집행정지 등 불복 절차를 밟겠다는 계획이다. 중재 당사자는 중재판정 후 120일 이내에 ICSID 사무총장에게 단 한 번 판정 취소를 신청할 수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전날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판정 결과 브리핑에서 “비록 론스타 청구액보다 감액됐으나 수용하기 어렵다”며 "중재판정부의 소수 의견이 정부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것만 봐도 이번 판정은 끝까지 다퉈볼 만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관계 부처 태스크포스(TF) 회의가 전날 오후 열렸다. 정부는 취소 신청을 하더라도 결과가 나오기까지 최소 1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전망한다.



론스타 책임 인정한 중재 판정부…취소 신청 근거로


중재 판정의 최대 쟁점은 한국 금융 당국이 론스타가 각각 홍콩상하이은행(HSBC) 및 하나금융과 진행한 외환은행 매각을 지연시켜 손해를 발생시켰는지 여부다. 중재판정부는 우선 인수 승인 지연으로 HSBC에 대한 외환은행 매각이 결렬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애초에 사건이 성립될 수 없다고 봤다. HSBC와의 매매계약이 파기된 것은 2008년 9월인데 이번 중재를 신청한 론스타 측의 주소지인 벨기에·룩셈부르크와 한국 간 투자보장협정이 발효된 시기는 그 이후인 2011년 3월이기 때문이다. 중재판정부는 협정이 발효되기 전 정부 조치·행위에 대해서는 관할이 없다고 보고 본안에서 판단하지 않았다.

문제는 협정 발효 이후인 2011~2012년 하나금융과의 협상 과정에 대한 내용이다. 론스타 측은 금융위원회가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지연하고 매각 가격을 인하하도록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는 국내법에 규정된 매각 승인 심사 기간은 권고 사항일 뿐이며 당시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각종 형사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이라 심사 연기가 불가피했다고 반박했다. ‘외환카드 주가 조작 의혹’과 같은 형사 사건에서 론스타가 유죄판결을 받은 후 외환은행 주가가 하락하자 하나금융과 론스타가 매각 가격 재협상에 나섰으며 이 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다.



중재판정부는 금융위가 외환은행 매각 가격이 인하될 때까지 승인을 지연시킨 것과 관련해 “금융 당국의 권한 내 행위가 아니므로 공정·공평 대우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며 정부의 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론스타의 형사 유죄판결이 나오는 등 귀책이 있다고 판단해 인하된 매각 가격의 절반인 2억 1650만 달러만 우리 정부가 배상하라고 판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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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 청구에 대해서도 투자보장협정 이전에 일어난 행위라는 점을 들어 관할이 없다고 봤다. 나머지 관할권이 인정되는 조세 청구에 대해서도 “한국 정부의 과세 처분은 국제 기준에 부합하므로 투자보장협정상 의무 위반이 없다”고 론스타 측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 외에 론스타가 청구한 향후 중재 판정에 따른 손해배상액에 부과될 수 있는 한국 및 벨기에의 세금 약 21억 8850만 달러에 대해서도 “미래에 부과될 세금까지 감안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목할 점은 정부의 책임이 전혀 인정되지 않는다는 소수 의견이 나온 점이다. 전체 분량 400쪽가량인 판정문에서 해당 의견이 차지하는 분량만 약 40쪽에 이른다고 한다. 정부가 판정 취소를 적극 검토하는 이유다.

한 장관은 “중재판정부의 소수 의견이 정부 책임을 전혀 인정하지 않은 것만 봐도 이번 판정은 끝까지 다퉈볼 만하다”며 “피 같은 국민의 세금이 한 푼도 유출되지 말아야 한다는 각오로 (취소 신청 절차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판정 취소 후 2라운드도 녹록치 않을 듯


정부가 부처 간 논의를 거쳐 판정 취소 및 집행정지 신청 등에 적극 나선다는 입장이지만 녹록치는 않을 전망이다. 1966년 ICSID 설립 이래 지난해까지 접수된 133건의 취소 신청 가운데 약 15%인 20건만 전부 또는 일부 인용됐다. 앞서 이란 다야니 가문이 소유한 엔텍합이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합병(M&A) 과정에서도 ‘한국 정부가 한·이란 투자보장협정(BIT)상 공정·공평 대우 원칙을 위반했다’며 제기한 투자자·국가소송(ISD)에서 우리 정부가 패소한 데 이어 선고 취소 소송마저 받아들여지지 않은 적이 있어 낙관적으로만 볼 수 없다는 의견이 많다.

게다가 선고 취소 신청이 장기간 진행되면서 지연이자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정부가 예비비나 법무부 예산 등으로 배상금을 충당해 우선 지급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배상금이 3000억 원에 이르는 만큼 정부가 론스타 측과 분할 지급에 대한 협의를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한편, 론스타 외에도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제기한 1조 원대의 ISDS 사건 등 우리 정부를 상대로 한 수조 원대 소송 6건이 진행되고 있다. 현재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된 ISDS는 총 10건으로, 이 가운데 론스타 ISDS를 포함해 4건은 종료됐고 6건은 현재 진행 중이다.

진행 중인 사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2018년 7월 엘리엇이 제기한 7억 7000만 달러(약 1조 10억 원) 규모의 소송이다. 삼성물산의 주주였던 엘리엇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승인 과정에서 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 등이 투표 찬성 압력을 행사해 손해를 봤다며 ISDS를 제기했다. 다른 미국계 헤지펀드인 메이슨캐피털매니지먼트 역시 비슷한 시기에 이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고 주장하며 2억 달러(약 2600억 원) 규모의 ISDS를 냈다. 같은 해 10월에는 스위스에 본사를 둔 승강기 업체 쉰들러홀딩아게가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의 책임이 정부에 있다며 1억 9000만 달러(약 2470억 원) 규모의 ISDS를 제기했다.

글로벌 개인투자자들이 제기한 ISDS도 진행 중이다. 2020년 7월 한 중국인 투자자는 국내에서 수천억 원대의 대출을 받은 후 이를 갚지 않아 담보를 상실한 뒤 우리 정부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1억 5000만 달러(약 1950억 원) 규모의 ISDS를 제기했다. 이듬해 5월에는 또 다른 외국인투자가가 부산시 재개발 사업에 따른 토지 수용으로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며 537만 달러(약 70억 원) 규모의 ISDS를 제기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이란 다야니 가문이 배상금을 빨리 지급해달라는 취지로 두 번째 ISDS를 제기했다. 다야니 가문은 2015년 대우일렉트로닉스 인수 과정에서 계약금이 채권단에 몰수되자 935억 원 규모의 ISDS를 제기했다. 중재판정부는 청구 금액 중 730억 원 상당을 다야니 측에 지급하라는 판정을 내렸지만 정부는 대이란 제재 및 금융거래 제한으로 배상금 지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 정부를 상대로 한 ISDS가 앞으로 10건 이상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ISDS를 제기하려는 측은 통상 중재 제기에 앞서 상대 정부에 협상 의사가 있는지 타진하는 서면 통보인 중재의향서를 보낸다. 중재의향서 접수 후 90일이 지나고 나면 실제 중재 제기가 가능하다. 우리 정부에 중재의향서를 보낸 뒤 정식 중재 제기를 하지 않은 사건은 총 7건이다. 이 중 합의로 종료된 1건을 제외한 나머지 사건들은 향후 중재 제기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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