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미열만 나도 아이 업고 서울 갑니다" 백혈병 자녀 둔 춘천맘의 호소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소아암 진료체계 붕괴 현실 지적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부족한데 소아응급실마저 문닫아

전문의 수도권 쏠림 가중되며 지방은 의료공백 더 심해

백혈병 환자들은 치료과정에서 면역력이 심각하게 떨어져 있어 감염 위험이 높다. 이미지투데이백혈병 환자들은 치료과정에서 면역력이 심각하게 떨어져 있어 감염 위험이 높다. 이미지투데이




“춘천에는 대학병원이 2곳이나 되는데 2곳 다 백혈병 환자를 볼 수 있는 소아청소년과 선생님이 안 계신대요. 그래서 서울로 치료를 받으러 다닙니다. "



춘천에 사는 주부 최선아씨(가명).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자녀의 감염을 우려해 매 시간 체온을 잰다. 문제는 열이 펄펄 나는 응급상황이 발생해도 인근에는 받아줄 병원이 없다는 것. 최씨는 "아이가 미열만 나도 담당 선생님이 있는 서울로 가야 한다"며 “한밤중에도 몇시간씩 운전해 응급실을 가는 일이 일상이 됐다”고 토로했다.

6일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에 따르면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수가 나날이 감소하면서 소아청소년 암환자가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도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2022년 9월 현재 전국에서 진료 중인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는 67명, 평균 연령은 50.2세다. 이들 중 절반에 가까운 31명(46.3%)은 10년 이내 은퇴를 앞두고 있다. 당장 5년 안에 은퇴 예정인 인원도 14명(20.9%)에 이른다.

2022년 전국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분포. 사진 제공=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2022년 전국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분포. 사진 제공=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최근 5년간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연평균 2.4명 배출됐음을 고려할 때 당장 10년 뒤부터 소아청소년 암 치료인력 부족을 우려해야 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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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청소년 암환자들에겐 조혈모세포이식부터 항암치료, 방사선치료, 면역치료, 뇌수술, 소아암 제거수술 등 강도 높은 치료가 요구된다. 성인암 환자의 상당수가 외래에서 통원치료가 가능한 것ㅐ과 달리 대부분 입원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소아청소년 암환자들은 가까운 대형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기 어렵다.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을 제외한 지방에선 이미 전문의 부재로 인한 진료 공백이 현실화했다. 2022년 9월 현재 소아혈액종양 전문의 분포 현황을 살펴보면 강원, 경북 지역은 전문의가 아예 없다. 울산 지역은 은퇴한 교수 1명이 외래진료만 시행 중이고, 충북, 광주, 제주 등 나머지 지역들도 전문의가 1명 뿐이어서 입원치료가 불가능하다.

2003-2017년 거주지 이외에서 치료받는 소아암 환자 비율. 사진 제공=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2003-2017년 거주지 이외에서 치료받는 소아암 환자 비율. 사진 제공=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실제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정책위원회가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7년도에 서울 이외 지역에 거주하면서 거주지를 벗어나 치료를 받는 소아청소년 암환자는 70%에 달했다. 강원 지역에 거주하면서 서울, 경기 등 다른 지역에서 치료받는 환자는 2015년에 86%까지 차올랐고, 서울 다음으로 큰 도시인 부산도 67%에 이르렀다. 부산에 사는 소아청소년 암환자들은 지역 내 수많은 대형병원을 두고도 KTX를 타고 서울에 올라와 진료를 받는다는 의미다.

가장 큰 문제는 원인 모를 고열 등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다. 백혈병과 같은 소아청소년 암은 치료과정에서 면역력이 심각하게 떨어진다. 독한 항암제가 암세포만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체내 면역을 담당하는 세포와 장기에도 손상을 입히는 탓에 수반되는 부작용이다. 이런 연유로 소아청소년 암환자와 가족들에게는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공공장소에 가거나 음식 하나를 먹는 것조차 부담일 수 밖에 없다. 특히 감염의 지표인 발열이 나타나면 패혈증과 같은 중증 감염으로 진행될 수 있어 신속한 입원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소아응급실마저 문을 닫으면서 소아청소년 암환자들은 열이 나도 입원이 가능한 병원을 찾으려 전전해야 한다. 치료가 몇 시간씩 지연되다보면 중증 패혈증으로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가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학회는 365일 24시간 중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응급상황에 대처하려면 병원마다 최소 2~3명의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없는 지방 병원에서는 1~2명의 소아혈액종양 전문의가 주말도 없이 매일 입원 환자와 외래 환자를 관리하고 있다. 병원에서 의사를 더 고용하면 해결될 문제지만, 중증 진료를 할수록 적자인 국내 의료보험 수가 구조로 인해 대부분의 병원들은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를 더 고용하려 하지 않는다. '어디서나 암 걱정 없는 건강한 나라'를 만들겠다던 보건복지부의 비전과 한참 동떨어진 현실이다.

김혜리 대한소아혈액종양학회 정책이사(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지방에서 올라와 2~3년의 치료기간을 버티느라 치료비, 주거비 등 엄청난 경제적 부담에 시달리다보면 끝내 가족이 붕괴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며 "서울 대형병원은 그나마 낫지만 지방 병원들은 전문의들이 지원조차 하지 않아 진료 공백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몇 명 남지 않은 소아혈액종양 전문의들이 이러한 현실을 사명감만으로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소아청소년 암 부문의 열악한 의료 인프라가 하루빨리 개선되지 않는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이 떠안아야 한다. 김 이사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국내 소아청소년암 생존율이 점차 낮아질 위기에 처했다"며 "저출산 시기에 출산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태어난 소중한 아이들을 한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도록 소아청소년 암치료에 대한 국가의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안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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