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담아 누구에게인가 보낼 성금을 넣는 ‘노란봉투’는 죄가 없다. 그러나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은 존재해서는 안 되는 법률이다.
제21대 국회에서 6건의 노란봉투법안이 발의됐다. 법안은 불법 쟁의행위 시 노조, 노조 임원, 조합원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와 가압류를 제한하는 내용이다. 그중 4개 법안에는 “폭력·파괴행위가 있었더라도 노조의 의사 결정에 따른 경우라면 손해배상·가압류가 금지된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노조의 ‘폭력·파괴행위’를 조장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헌법 제23조는 국민의 기본권으로서 재산권 보호를 규정하고 민법 제750조(불법행위)는 재산권 침해에 대해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한다. 이것은 모든 근대 민주주의국가의 헌법과 민사법에 예외 없이 규정돼 있다. 노동운동으로 인한 손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독일 등의 ‘산별노조’ 체제와 달리 영국은 ‘기업별 노조’ 체제이고 막대한 손해배상은 재정이 취약한 기업 노조의 존립 근거를 위태롭게 할 수 있기에 영국에서 유사한 법률이 나온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위 법안들은 영국법을 근거로 한다. 그러나 영국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은 대체 근로 허용, 파업 12주 이후 해고 가능 등 사용자를 위한 충분한 장치를 두고 있고 찬반 투표, 사용자 통보 등 엄격한 절차적 요건 중 하나라도 위반하면 면책을 박탈한다. 특히 폭력 및 파괴적 피케팅 행위는 면책될 수 없고 해당 조합원은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한 나라의 법률 시스템 전체를 보지 않고 매우 독특한 규정 하나를 따와 한국 법체계에 끼워 넣는 것은 한국 고유의 법체계를 파괴할 위험이 매우 크다.
1871년 영국 노동조합법은 노동운동으로 사업자에게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그 손해를 발생시킨 조합원이 아닌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게 했다. 노조가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는 불법행위법상의 ‘대위 책임(vicarious liability)’ 이론이 차용됐기 때문이다. 근로자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재력이 없다면 실질적인 손해배상이 불가능하다. 이에 그 근로자를 고용한 사용자에게 ‘감독 책임’ 태만을 이유로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사용자 책임 이론’이다. 모든 나라가 ‘사용자 배상 책임’을 인정하고 있고 한국 민법 제756조에도 규정돼 있다.
영국에서는 1871년 법부터 2016년 법까지 150여 년간 수많은 논의 끝에 노조의 ‘수권 또는 승인을 받아(done, authorized or endorsed)’ 행한 경우에만 노조가 책임을 지되 손해배상액에 캡을 씌우는 방식이 정착됐다. 다만 조합원 개인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민법상 불법행위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에 이론(異論)이 없다. 단체인 ‘노동조합’의 책임만 일정 부분 면책시킬 뿐 폭력·파괴행위가 있더라도 개인과 노조 모두 면책된다는 식으로 돼 있지는 않다. 이는 불법행위법의 어떤 이론을 동원한다고 해도 설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노조법 제3조도 ‘정당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에 대해서는 사용자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돼 있다. 어떤 나라가 “폭력·파괴행위가 있었더라도 손해배상·가압류가 금지된다”는 식의 무소불위 폭력행사권을 노조에 부여하겠는가. 이런 법안은 민사법의 2대 영역 중 하나인 ‘불법행위법 체계’를 크게 훼손한다. 이런 엉터리 법안 발의는 법체계를 망치고 나라를 무법천지로 만드는 것과 같다. 법률은 국회의원들이 멋대로 갖고 놀다가 망가뜨려도 좋은 장난감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