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마켓

유가 빼고 임대료·교통비 다 올라…"美 인플레전쟁 이제 시작"

[美 CPI 쇼크]

통신부터 교육·의료비까지

가격 경직성 높은 품목 상승

휘발유 등 에너지값 관리로

물가 잡을 수 없는 한계 노출

'I 뇌관' 하락 전환 쉽잖을 듯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 슈퍼마켓에 소고기가 진열돼 있다. 미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대비 6.3% 상승했다.AFP연합뉴스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한 슈퍼마켓에 소고기가 진열돼 있다. 미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대비 6.3% 상승했다.AFP연합뉴스




휘발유를 비롯한 에너지 가격이 눈에 띄게 떨어졌지만 그뿐이었다. 미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에너지를 제외한 식품·외식비·전기료·가스비·주거비 등 다른 대다수 품목의 물가가 여전히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가격이 떨어진 주요 품목은 에너지를 제외하면 전월 대비 0.1% 내린 중고차 정도다.



8월 전체 CPI는 전년 동월에 비해 8.3% 올라 시장 전망치(8.1%)보다는 올랐지만 전월(8.5%)보다 상승 폭이 다소 둔화됐다. 그럼에도 13일(이하 현지 시간) 나스닥지수가 5.16%나 급락하는 등 전 세계 시장이 놀란 것은 단지 물가가 예상치를 웃돌았기 때문은 아니다. 스티븐 스탠리 애머스트피어폰트증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수치 자체보다 구성이 훨씬 더 큰 문제”라며 “휘발유 가격 하락 외에 인플레이션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이는 연준이 여전히 할 일이 많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는 곧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에너지 가격을 관리한다고 해서 잡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의미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의 경우 6.3% 상승해 전월 5.9%보다 상승폭이 0.4%포인트 커졌다. 시장 전망치(6.1%)도 넘어섰다.

특히 가격이 상승한 품목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물가가 당분간 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표적인 항목이 주거비다. 7월에 0.5% 올랐던 임대료 등 주거비는 8월 들어 상승률이 0.7%로 더 커졌다. 지난해 동월 대비로는 6.3% 뛰어 1986년 4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올랐다. 주거비는 전체 CPI에서 30%가량을 차지하는 데다 한 번 움직이면 좀처럼 추세가 변하지 않는(sticky) 항목으로 꼽힌다. 교통비 역시 7월에 0.5% 하락했지만 8월 들어서는 오히려 0.5% 상승으로 돌아섰다. 연간 증가율은 11.3%에 이른다.



이 밖에 7월 0.1% 하락했던 통신 및 교육비가 0.2% 상승세로 돌아섰으며 의료비도 0.8%로 상승 폭이 커졌다. 외식비는 0.7% 올랐다. 이들 모두 주거비와 마찬가지로 가격 경직성이 큰 항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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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이 이날 발표한 8월 경직성물가지수(Sticky-CPI)는 전년 대비 6.1%올라 1982년 8월 7.1% 이후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체 CPI의 상승 속도는 둔화하고 있지만 경직성물가지수는 지난해 7월 이후 13개월째 상승세를 이어가는 중이다. 중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 잡기가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시장에서는 그동안 휘발유 가격에 좌우되던 인플레이션이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애나 웡 블룸버그 이코노미스트는 “모두가 휘발유 가격 하락이 다른 품목의 물가까지 끌어내릴 것이라고 믿었지만 8월의 근원 CPI는 놀라울 정도로 강했다”며 “이는 이제 임금이 인플레이션의 중심이 됐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현재 미국의 고용 시장은 여전히 인력 수급의 불균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7월 고용보고서 등에 따르면 미국 기업들의 7월 구인 건수는 1120만 명인 반면 실업자 수는 570만 명으로 여전히 구직자보다 일자리 수가 2배 더 많다. 근로자들이 조건 좋은 일자리를 골라갈 수 있는 여건 속에서 7월 이직자들의 임금은 평균 6.7% 상승했다. 임금 상승은 기업의 생산 비용을 높여 상품과 서비스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이 된다. 손성원 로욜라메리마운트대 교수는 “임금과 주거 비용이 미래 인플레이션의 주요 동인으로 남을 것”이라며 “인플레이션이 크게 완화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내다봤다.

임대료의 경우 치솟는 모기지 이자율이 부담이다. 미 모기지은행협회에 따르면 이달 9일까지 집계된 지난주 미국 30년 모기지 평균 이자는 6.01%로 직전 주(5.94%)보다 상승해 2008년 이후 처음으로 6%를 넘어섰다. 이자 부담이 늘면 주택 구매 대신 임대 수요가 증가하고 이는 곧 임대료 상승으로 이어진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고강도의 금리 인상을 예고하는 만큼 모기지 금리는 앞으로 더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 세라 하우스 웰스파고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주거비가 하락 추세로 전환하는 데는 적어도 수개월이 더 걸릴 것”이라고 봤다.

한편 14일 발표된 8월 생산자 물가지수(PPI)는 전년 동월 대비 8.7% 올라 시장의 예상치(8.8%)는 물론 7월 수치(9.8%)보다도 낮았다. 하지만 식품·에너지를 제외한 핵심 PPI는 7.3%로 집계돼 시장 예상치를 0.3%포인트 웃돌았다. 블룸버그통신은 “인플레이션이 이어질 것이란 우려에 힘을 더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뉴욕=김흥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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