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美 '반도체 지원' 똘똘 뭉치는데…韓은 특별법 외면 '적전분열'

■반도체 패권전쟁에 韓美 상반된 행보

美 대통령·의회 '반도체법' 일사천리

장관이 나서 대만업체도 투자 유치

韓, 기반시설 건설 인허가 중단 등에

용인클러스터 사업 3년 이상 표류

업계 "결단 늦을수록 경쟁력 하락"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인플레이션감축법 입법 기념행사에 참석해 낸시 펠로시(오른쪽) 하원 의장,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주먹을 맞대고 있다. EPA연합뉴스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인플레이션감축법 입법 기념행사에 참석해 낸시 펠로시(오른쪽) 하원 의장,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주먹을 맞대고 있다. EPA연합뉴스




반도체가 최근 국가 안보의 핵심 자원으로 떠오른 가운데 한국 정치권의 무사안일한 태도에 대한 비판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미국·중국 등 경쟁국들이 반도체 산업 보호·육성에 일치단결한 자세로 천문학적인 액수의 지원금을 퍼붓는 동안 우리나라 국회는 특별법을 상정도 하지 않고 있다. 반도체 동맹을 주도하는 세계 최강국 미국조차 장관급이 해외 업체를 직접 설득해 투자를 유치하는 반면 한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자국 기업에 기반 시설을 제공하는 데도 인색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14일 재계와 정·관계에 따르면 국민의힘이 반도체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지난달 4일 발의한 반도체특별법은 아직 국회에서 심의도 못 하고 있다. 이 법은 이달 정기국회 심사 대상에 오르지도 못했다. 심사 법안의 기준을 7월 15일까지 발의한 것으로 정한 탓이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글로벌 위기 상황을 고려해 반도체특별법 개정안에는 예외를 적용하자고 제안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숙의 기간이 부족하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반도체 기업에 더 빠르게 기반 시설을 제공하고 인재 양성을 지원하는 각종 법안들도 대부분 상정 안건에서 제외됐다. 국가전략산업의 운명이 이재명 민주당 대표 의혹 수사, 김건희 여사 특별검사 도입 논란,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와 이준석 전 대표 간 갈등 등 국내 정치 이슈에 사실상 밀린 셈이다. 업계에서는 수도권 대학 정원 규제 해제의 경우 이해관계가 워낙 첨예해 법 개정을 통한 문제 해결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대규모 시설 투자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무능한 태도도 기업들의 속을 태우는 부분이다. SK하이닉스(000660)가 120조 원이나 투자하기로 한 용인 클러스터 사업은 각종 규제와 비협조 속에 3년 이상 표류 중이다. 7월로 예정했던 착공식도 차일피일 미뤄졌다. 여주시는 최근에도 클러스터 공업용수 관로 건설 인허가 절차를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른 나라는 신규 공장 설립 때 당연히 정부가 책임지는 물·전기 공급 문제를 한국에서만 기업들이 웃돈을 주고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중앙·지방정부의 의지도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다. 앞서 삼성전자(005930) 역시 송전탑 건립을 둘러싼 지역 주민과의 갈등에 평택 공장 건립이 5년이나 지연된 바 있다. 삼성전자는 송전선 지중화에 750억 원가량을 추가로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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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최근 자국 산업 보호 법안을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미국과는 크게 대조를 이루는 대목이다. 미국 민주당은 자국 반도체 기업에 대폭적인 혜택을 주는 ‘반도체지원법(반도체 칩과 과학법)’을 두고 공화당과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수정안에 핵심 지원책만 떼서 담았다. 이후 과정은 일사천리였다. 7월 상·하원에서 단번에 통과된 이 법은 결국 8월 9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서명으로 이어졌다. 자국 전기차에 힘을 싣는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경우 8월 7일 상원 통과, 12일 하원 통과, 16일 대통령 서명 등 최종 처리까지 2주가 채 걸리지 않았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한국에 투자하려던 대만 반도체 회사를 직접 미국으로 끌어들이기도 했다. 러몬도 장관은 6일(현지 시간) 공개된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6월 세계 3위 웨이퍼 제조 기업인 대만 글로벌웨이퍼스의 최고경영자(CEO) 도리스 수와 1시간가량 통화한 끝에 마음을 바꿔놓았다고 밝혔다. 보조금·세제 혜택 등 한국보다 더 나은 공장 건설 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자국 반도체 산업 보호에 열을 올리는 나라는 미국뿐만이 아니다. 중국은 자급자족식 ‘반도체 굴기’를 완성하기 위해 국책 차원에서 지원을 쏟고 있다. 일본은 반도체 산업 지원을 위해 올해 7740억 엔(약 7조 4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고 5월에는 반도체 산업 생태계 구축 근거인 경제안보법을 통과시켰다. 유럽연합(EU)도 2030년까지 430억 유로(약 56조 원) 규모의 ‘EU반도체지원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반도체는 결정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경쟁력이 떨어지는 산업이고 그 피해는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다 떠안게 된다”며 “공공의 이익과 민간의 이해를 구분해야 하는데 정치 논리가 끼어들면 상식에서 벗어나게 된다”고 꼬집었다. 우태희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이날 법무법인 세종과 공동으로 개최한 ‘미국·EU의 보조금 입법 동향 및 대응 방안’ 세미나에서 “주요국이 새롭게 도입한 보조금 법안들이 우리 기업에 이중고로 다가오고 있다”며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보조금 법안들은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 경쟁력에 상당한 제약 요인이 된다”고 우려했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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