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 백혈병으로 진단 받은 아이들은 긴 치료 여정을 견뎌야 합니다. 힘든 항암치료와 조혈모세포이식을 거쳐 완치 판정을 받았다가 재발하는 사례도 많죠. 오랜 투병에 지친 환자들에게 카티(CAR-T) 치료제를 투여할 길이 열려 참 다행입니다. "
김성구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14일 서울경제와 만나 "카티 치료제 '킴리아'가 국민건강보험을 적용받게 되면서 백혈병 환아와 가족들이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됐다"며 이 같이 말했다.
◇ 소아 백혈병 매년 400여 명 진단…필라델피아 양성은 예후 더 나빠
백혈병은 미성숙한 백혈구가 병적으로 증가해 혈액세포 생산을 담당하는 골수의 기능을 억제하고, 혈액을 통해 다른 장기로 퍼지는 혈액암이다. 만 18세 미만의 소아청소년에게 발생한 경우를 소아 백혈병이라고 부른다. 소아 백혈벙은 소아암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2019년 한 해동안 15세 미만 연령군 10만 명당 4.4명에서 백혈병이 발생했다. 뇌종양을 비롯한 중추신경계 종양(2.1명)과 비호지킨림프종(2.0명)과 2배 이상의 격차를 벌리며 발생률 1위다.
백혈구 중에서도 림프구계 백혈구가 제대로 성숙하지 못해 암세포로 변하는 유형을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Acute lymphoblastic leukaemia·ALL)으로 구분한다. 소아 백혈병은 대부분 이 유형이다. 2세부터 발생률이 증가해 3~6세 사이에 가장 높아졌다가 이후 차츰 감소한다. 국내에서는 연간 약 400명의 환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급성'이란 표현 그대로 ALL의 성향 자체가 매우 공격적이고 진행 속도가 빠르다는 것이다. 혈액 속 적혈구 생산을 담당하는 골수 기능이 억제되면 빈혈이 생기고 쉽게 피곤해지지만 초기 단계에서는 증상을 감지하기 어렵다. 본격적인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2~3개월 밖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다 보니 발견한 후에는 이미 치료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 김 교수는 "특히 필라델피아 염색체 양성인 환자는 필라델피아 염색체 음성에 비해 치료 반응률이 낮고 예후가 나쁘다"며 "항암치료와 조혈모세포이식까지 받은 다음에 재발하면 선택지가 더욱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 항암치료·조혈모세포이식 후에도 또 재발하면 ‘카티’가 유일한 희망
김 교수가 3년 전 진료실에서 만난 정 모군(8)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2019년 10월 필라델피아 양성 ALL으로 진단 받고 항암치료를 시작했던 정 모군은 이듬해 3월 형제로부터 조혈모세포를 이식 받았다. 골수검사상 백혈병 세포가 5% 미만으로 감소한 ‘완전관해(Complete Remission·CR)'에 도달해 퇴원 후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올 4월 같은 질환이 또다시 재발했다. 이처럼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환자에게 전달해야 하는 순간은 백혈병 환자를 수없이 만나는 김 교수에게도 결코 쉽지 않다. CR은 엄밀하게 완치와는 다른 개념이다. 관해 후 정상 조혈 기능은 회복됐지만 현미경 상 관찰되지 않는 백혈병 세포가 남아있는 미세잔존질환(Minimal Residual Disease·MRD) 등으로 재발하는 환자들도 많다. CR 도달 후 약 60~70%의 환자가 재발한다는 집계가 있을 정도다.
고심 끝에 김 교수가 내린 결정은 '킴리아'를 투여해 보자는 것. 킴리아는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카티 치료제다. 단 1회 투여로 혈액암 환자의 절반 가량이 완치돼 ‘원샷 치료제’라고도 불린다. 기존 항암치료에 더이상 반응이 없거나 재발한 ALL 환자 10명 중 8명이 장기 생존한다고 알려져 있다. 카티 치료는 환자의 혈액에서 체내 면역을 담당하는 T세포를 추출하고 유전자 조작을 통해 키메릭 항원 수용체(CAR)를 발현시킨 뒤 재주입하는 방식이다. 면역세포에 일종의 네비게이션(항체)을 달아줘 암세포만 골라 죽이도록 유도하는 맞춤형 치료인 셈이다. 환자의 몸 속에 넣으면 암세포의 특정 수용체를 표적으로 인식해 정확하게 공격한다.
◇ 올 4월부터 ‘킴리아’ 건보 적용…환자 부담금 5억 원에서 598만 원으로
문제는 1회 치료 비용이 5억 원에 달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올 4월부터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돼 환자 부담금이 최대 598만 원으로 줄었다. 물론 비용만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 사이토카인 방출 증후군(CRS)과 같이 치료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에도 대비해야 한다. 카티 치료를 할 때 70~90%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알려진 CRS는 발열·관절통·구토·설사·빈맥 같은 증상에서 시작해 심할 경우 쇼크·발작·섬망·의식저하·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중환자실에서 치료받는 비율도 10~40%에 달한다. 환자의 T세포를 추출해 처리하고 보관할 수 있는 세포처리시설 구축은 물론이고 CRS와 같이 위험한 부작용의 징후를 조기에 발견해 신속하게 치료할 수 있는 관리 역량도 중요하다. 서울성모병원은 1983년 3월 국내 처음으로 백혈병 환자의 동종조혈모세포이식을 성공한 이래 지난해 12월까지 누적 9465건의 조혈모세포이식을 시행했다. 단일기관 조혈모세포이식으로는 세계 최고 기록이다. 조혈모세포이식에 이어 카티 치료 도입을 앞두고도 선제적인 대비를 마쳤다. 세포처리시설의 우수의약품제조관리기준(GMP)을 구비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인체세포 등 관리업 허가를 받았을 뿐 아니라 중증 부작용 치료에 쓰일 인터루킨(IL)-6 억제제의 수급 문제를 해결하며 안전한 카티 치료 시스템을 완벽하게 조성한 것이다.
정 군은 재발 판정 한 달 여만인 5월 10일 혈액에서 T세포를 추출하고, 6월 14일 맞춤형으로 배양된 카티세포를 투여 받았다. 입원치료 중 빠르게 상태가 안정됐다. 골수검사에서 CR 판정을 받고 7월 1일 퇴원했다. 일주일 뒤 시행한 혈액검사에서는 필라델피아 염색체도 음성인 최고상태 완전관해에 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교수는 "미만성 거대B세포 림프종과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 환자 19명에게 순차적으로 카티 치료가 이뤄지고 있다"며 "새로운 치료법이 안전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후속 관리에도 더욱 힘쓰겠다"고 강조했다.
‘메디컬 인사이드’ 코너는 보건의료계에서 주목받는 의료진과 병의원의 활약상을 전달하는 연재물입니다. 임상연구·개발과 진료 등의 영역에서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의료진과 만나 숨겨진 이야기들을 인터뷰 형식으로 소개합니다. 또한 의료기관 내 다양한 진료과와 부서 차원의 협력을 통해 의료계 변화를 선도하는 센터를 직접 찾아가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