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당대회에 참석한 당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사진제공=정의당 정의당이 17일 당 노선과 비전을 새로 설정하고 2023년까지 당명을 개정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정의당 재창당 결의안’을 채택했다. 정의당은 대선·지선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두면서 위기에 빠졌다는 평가가 나오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한 뒤 당 재정비에 나선 바 있다. 이날 결의안이 채택됨에 따라 정의당은 새 지도부를 구성하는 등 당 조직개편에 착수할 예정이다.
정의당은 이날 제 11차 대의원대회를 열어 이같은 내용의 결의안을 승인하고 비대위 당 평가서를 확정했다고 밝혔다. 당 평가서는 △당 노선 평가 △양대선거평가 △조직재정평가로 구성돼있다. 이외에도 정의당은 지난 정의당 전국위원회에 상정했던 △당대표 권한 강화 및 부대표 3인 중 지명직 노동부대표 신설 △지역위원장 전국위원회 정수 신설 △조직강화위원회 신설 등의 당헌·당규 개정안을 확정하고 당 부채 해결 특별결의문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동영 정의당 대변인은 “오늘 대의원회의 결의에 따라 오는 10월 당 혁신과 재창당을 이끌 혁신지도부 선거에 돌입한다”며 “선거 과정에서 노선·비전 경쟁을 통해 구체적인 추진 방향과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변인에 따르면 정의당은 오는 23일 지도부 선거를 공고한 뒤 27~28일 양일간 후보 등록을 받는다. 전국 순회 유세 및 TV토론은 29일부터 10월 13일까지 진행된다. 이후 10월 14~19일 전당원투표를 통해 혁신지도부가 선출된다. 과반득표자가 없는 경우 10월 23~28일 결선투표가 진행된다.
결의안에 따르면 정의당은 △대안사회 비전과 모델 제시 △당 정체성 확립 △노동 기반 사회연대정당 △정책 혁신 정당 △지역 기반 정당 △독자적 성장 전력에 기반한 전술적 연합정치 △당원 사업 활성화를 개혁 방향으로 설정했다. 당 조직 개선과 당명 개정 역시 이 방향에 맞춰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이 대변인은 “정의당은 결의안을 바탕으로 누구를 대표하는 정당인지 정체성과 노선, 지지기반을 분명히 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약자들의 정당으로 나아가겠다”며 “시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유능한 대안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지역과 현장에서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다음은 정의당 결의안 전문.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채구이원장이 17일 국회에서 열린 정의당 당대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성형주 기자 정의당 재창당 결의안
정의당은 10년 전인 2012년 ‘노동자, 농민, 일하는 서민들의 삶을 책임지는 진보정당’을 표방하며 출범했다. 하지만 지난 두 차례의 선거를 통해 노동자, 농민, 일하는 서민들이 정의당의 효용성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정의당은 무엇이었나. 정의당은 좋은 정당인가. 정의당은 지속 가능한가.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한 정의당의 지난 10년은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취약한 지지기반과 모호한 정체성이 정의당의 현실이었다. 취약한 지지기반은 주요 정치적 이슈에 따라 당이 휘청거리는 허약함의 원인이었다. 정의당은 거대양당을 공격하면서 대안의 정치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왜 정의당이 대안이어야 하는지를 입증하지 못했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중심에 둔 정의당만의 의제를 보여주지 못한 채 거대정당이 설정해놓은 정치적 이슈를 중심에 놓고 행보하는 데 급급했다.
정의당은 민주당과의 개혁 공조를 통해 선거제도 개혁을 이루고자 했으나 위성정당 사태로 실현하지 못했고, 다원적 민주주의 실현에 다가서지 못했다. 정의당은 정치개혁을 완수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혁신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 이제 백척간두진일보의 심정으로 진보정치의 전면적 혁신을 위한 재창당에 나서야 한다.
정의당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혁신을 이뤄내지 못해 한국의 진보정치 역사에서 부끄러운 오명으로 기록되는 것이다.
재창당의 방향은 다음과 같다.
1. 대안사회모델을 제시하는 정당이 돼야 한다. 정의로운 복지국가 강령은 진보적 국가모델로써 더는 유용하지 않게 됐다. 거대양당보다 더 많은 복지를 약속하는 것이 정의당의 정체성이 될 수 없다. 노동시장 내부의 양극화, 플랫폼 노동과 같은 고용구조의 변화, 지구적 위기로 현실화된 기후위기, 사회적 약자를 향한 차별·혐오의 확산, 신냉전과 전쟁위기 등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담은 대안사회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2.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정당이 돼야 한다. 국민이 정의당에 바라는 것은 정치 고관여층만 관심 가지는 정치적 이슈나 정의당 의석 확보를 위한 선거제도 개혁이 아니다. 중대재해처벌법, 차별금지법과 같이 사회적 약자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민생정당으로써의 위상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국민은 선거제도 개혁에 화답한다.
3. 노동에 기반한 사회연대정당이 돼야 한다. 정의당은 일하는 사람의 정당, 비정규직의 정당을 표방해왔으나, 선언에 그치거나 파편적 대응에 머물렀을 뿐이다. 어떤 정당도 구체적인 지지기반 없이 성장·발전할 수 없으며 진보정당 역시 노동을 일차적 지지기반으로 형성하지 않으면 집권세력으로의 성장, 발전은커녕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중앙당, 지역조직, 소속 국회의원이 정책·기획·조직에서 문제해결에 이르기까지 노동에 대한 종합적이고 전략적인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농민, 상인, 청년, 여성 등 각계각층으로 확대돼야 한다.
4. 정책을 혁신하는 정당이 돼야 한다. 민주노동당 이래 진보정당은 정책으로 승부를 거는 정당이었다. 하지만 정책역량의 지속적 축소, 구태의연한 정책의 재탕, 민주당과의 정책적 차별성 부각 실패, 정책의 정치화 전략 부재 등으로 인해 정책 정당이라고 자부하기 어려워졌다. 그동안 제시했던 정책을 사회의 변화에 맞게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당의 전략적 목표하에 정책을 혁신할 필요가 있다.
5.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정당이 돼야 한다. 당 지역조직은 다양한 지역 운동의 중심축이자 새로운 지역 운동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야 한다. 중앙정치 이슈에만 집중하는 것에서 벗어나 지역에서 작은 성과를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정치인을 육성해야 한다.
6. 시스템에 따라 운영되는 정당이 돼야 한다. 당의 총노선이 각급 의결단위를 통해 정해지면 중앙당, 지역조직, 의원단은 이를 토대로 활동해야 한다. 중앙당과 지역조직도 사람이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에 의해 운영되는 정당이 돼야 한다.
7. 연합정치를 전술적 차원으로 활용하는 정당이 돼야 한다. 연합정치에만 매몰되어서도 안 되지만 이를 무조건 배제하는 것도 현실의 정치세력이 취할 길은 아니다. 연합정치는 ‘전략’이 아니라 정의당의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계기별, 사안별로 유연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전술’일 뿐이다.
8. 당원이 성장하는 정당이 돼야 한다. 당원의 활력이 없는 것은 당원 문제가 아니라 당 차원의 기획이 없는 것의 문제다. 당원이 즐겁게 참여하고 당원 사이의 일체감을 높이는 기획이 풍성해야 한다. 당원이 학습과 실천 및 관계를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에 정의당 당 대회는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하나. 정의당은 강령, 당명 및 당헌·당규 개정을 포함해서, 2023년 안에 재창당을 완료한다.
하나. 차기 당 대표는 정의당 재창당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한다.
2022년 9월 17일 정의당 제11차 정기당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