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첫 대법관 후보로 지명된 오석준(사법연수원 19기)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린 지 3주가 넘도록 임명되지 않으면서 대법관 공백에 따른 문제가 현실화되고 있다. 전임 김재형 대법관의 퇴임이 오 후보자 임명 지연과 맞물려 중요 사건을 심리하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연기되고, 수백 건의 사건 처리도 지연되는 등 대법원 운영에 차질을 빚고 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기존에 매달 열어왔던 전원합의체를 잠정 중단했다. 이달 선고가 예정된 사건은 다음 달로 한 달 미뤄졌지만 오 후보자의 임명이 장기화될 수 있어 이마저도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상환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을 제외한 13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전원합의체는 주로 정치·사회적으로 논란이 있고 파급력이 큰 사건을 담당한다. 전원합의체의 경우 대법관 수가 짝수로 구성될 경우 선고를 할 수 없도록 헌법에 명시돼 있다. 따라서 대법관 정족 수가 채워지지 않을 경우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김 전 대법관의 퇴임 이후 해당 재판부의 사건 심리가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대법원은 대법관 4명씩 1~3부까지 총 3개의 소부를 꾸려 사건을 심리하지만 지난 4일 김 전 대법관의 퇴임으로 당장 사건을 담당할 대법관 1명이 부족한 상황이다. 대법원 3부에서 김 전 대법관이 주심으로 진행하던 사건은 퇴임일 기준으로 330건이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금 지급을 위한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자산매각’ 등 재항고 사건까지 포함하면 처리해야 할 사건 수는 총 1547건에 달한다.
대법원 관계자는 “나머지 대법관들이 임시방편으로 새로 들어오는 사건을 분담해 처리하고 있지만 기존에도 재판지연 문제를 겪고 있고 있는 대법원 입장에선 난감한 상황”이라며 “오 후보자 임명이 언제 이뤄질지 알 수 없어 재판부 재구성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아직 오 후보자 임명을 위한 국회 동의 절차 중 첫 단계인 청문보고서 채택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 후보자는 지난달 29일 열린 인사청문회 이후 23일째 국회 임명 동의를 받지 못하고 있다. 야당은 과거 오 후보자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판결과 ‘윤 대통령과의 친분’을 문제로 삼고 있지만 법조계에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기소 등을 두고 여야가 극렬하게 대치하면서 오 후보자의 임명 지연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법관 공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김상환 대법관은 전임자 퇴임 이후 81일, 조재연·박정화 전 대법관은 140일이 소요되는 등 대법관 임명은 여야 갈등에 따른 정쟁화로 번번히 차질을 빚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