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은 사찰이 반드시 종교에만 얽매여 있다면 대중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큰스님과 같은 뜻을 가진 문화·예술인들이 화합과 소통의 장에 나선다면 사람들에게는 큰 위로를 줄 수 있겠죠. 이것이야말로 불법이고 부처의 자비심이며 사찰의 역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인을 위한 도심 터전 ‘무산선원’을 연 주지 선일(사진) 스님은 17일 개원식 후 서울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종교가 우리들의 삶과 동떨어져 있다면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무산선원은 2018년 입적한 ‘무애(無碍)도인’ 무산(霧山) 스님의 화합과 상생 정신을 선양하고 문인과 예술인들의 교류와 소통을 위해 마련된 곳이다. 이날 개원식에는 시 낭송과 얼마 전 판소리 국가무형문화재가 된 안숙선 명창의 기념 공연 등이 진행됐다.
선일 스님은 종교를 영적이고 형이상학적으로 접근하기를 거부한다. 오히려 스승인 무산 스님과 마찬가지로 ‘대중 속으로’를 말한다. 사람들이 불교를 찾는 것을 신이나 종교 그 자체 때문이라고 보지도 않는다. 오히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접근한다. “사람들이 종교를 갖는 것은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단지 행복해지기 위한 것이지요. 내 행복에 티끌만큼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누가 종교를 가지려 할까요.” 만해 스님이 선종에서 벗어나 대승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한 것이나 무산 스님이 ‘대중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고 설파한 것과 다르지 않다.
무산선원이 문화·예술인을 위한 터전으로 탄생한 이유도 비슷하다. 종교가 대중 속으로 들어가려면 여러 방면에서 제 역할을 하고 나눠야 한다. 문화·예술도 시와 음악·그림 등으로 대중에 감동과 위로·희망을 주고 인생을 움직이는 계기를 제공한다. 종교인과 문화·예술은 이러한 의미에서 일맥상통한다는 게 선일 스님의 설명이다. 그는 “사람들은 불교 하면 산중에 있고 폐쇄적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며 “산과 바다·도심을 넘나들며 대중과 함께하는 것이야말로 종교와 문화·예술이 추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개원식에는 200명이 훨씬 넘는 인파가 몰렸다. 아담한 선원 공간에 발 디딜 틈을 찾기 힘들 정도였다. 눈에 띄는 인물들도 있었다.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여류 시인 신달자, 지금은 금배지를 달고 있는 도종환 의원, 안선숙 명창 등등. 모두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거목들이다. 이들이 모두 선원에 모인 이유가 무엇일까. 선일 스님은 ‘화합과 상생에 대한 갈증’을 꼽았다. 그는 “어떤 분야에서 주목을 받고 업적을 내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서로 다른 주관과 소신을 함께 모으고 화합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며 “여야 할 것 없이 종교를 구별하지 않고 이처럼 많은 사람이 참여한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갈망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실제로 ‘화합과 상생’은 선원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법당 안에는 다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있거나 여러 개의 눈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는 그림이 있다. 선원 입구 불상 옆에는 아기를 안고 있는 성모상도 있다. 모두 독선에서 벗어나 함께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선일 스님은 “큰스님이 모든 중생의 존재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까운 이웃을 부처님처럼 모시라는 가르침을 항상 주셨다”며 “무산선원을 개원한 것도 스승님과 뜻을 같이하려는 많은 문인·예술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무산선원은 문인·예술인들의 소통과 참여 확산을 위해 매달 한 번 시 낭송회를 가질 예정이다. 모든 것은 모임을 이끌고 있는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와 신달자 시인이 맡는다. 선일 스님은 행사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과 협조만 할 뿐이다. 그는 “무산 스님이 만해사상실천선양회를 건립하고 만해 대상과 만해 축전을 남겼다”며 “무산선원도 큰스님의 사상을 널리 알리는 다른 축제의 서막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