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018∼2019년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할 수 있는 것보다 그 이상"을 한 자신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아무것도 북한에 주지 않아 자신을 바보로 보이게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북미협상에 관여하지 않길 바라는 의중도 드러냈다. 전형적인 ‘통미봉남’전략을 내세웠던 셈이다.
25일 전·현직 주미 특파원 모임 한미클럽에 따르면 이달 발행한 외교안보 전문계간지 '한미저널 10호'에 김 위원장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2018년 4월부터 2019년 8월까지 주고받은 친서 27통 내용이 공개됐다. 북미가 사상 첫 정상회담을 하기로 합의한 이후부터 빈손으로 끝난 하노이 제2차 정상회담, 북미가 마지막으로 공개 실무협상을 하기 전까지의 기간이다.
2019년 6월30일 판문점에서 남북미 정상의 '깜짝 회동'이 열린 지 약 한 달 뒤 김 위원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나는 분명히 기분이 상했고, 이를 각하에게 숨기고 싶지 않습니다. 분명히, 나는 정말로 기분이 상했습니다"라며 당시 상황을 전달했다. 김 위원장은 또 트럼프 전 대통령을 실망하게 할 일은 할 계획은 없다면서도 몇 달 전 "꿈을 계속 간직하고 있던 (베트남) 하노이" 때와는 상황이 달라져 북한은 이제 서두를 이유가 없다고 압박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자신의 관계를 강조하며 미국이 연말까지 '새로운 계산법'을 가져올 것도 기대했다.
김 위원장은 "나는 우리가 만난 이후 무엇이 바뀌었는 지에 대해 인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며 실망감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그는 "어떠한 조치들이 완화되었다든가 내 국가의 대외 환경이 개선되기라도 했는가? 군사훈련이 중단되었는가"라며 "미국이 이를 압박과 대화를 통한 대북정책의 성공을 자평한다면 큰 실수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2018년 9월 21일자 친서에서는 "저는 향후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이 아니라 각하와 직접 한반도 비핵화 문제를 논의하길 희망한다"면서 "지금 문 대통령이 우리의 문제에 대해 표출하고 있는 과도한 관심은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남북정상회담(9월 19일) 직후라는 점을 고려하면 김 위원장은 미국과의 직접적인 협상 타결을 노렸던 셈이다..
김 위원장은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 국무장관의 방북 계획이 취소된 직후인 2018년 9월 6일자 친서에서는 "각하의 의중을 충실히 대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 어려운 폼페오 장관과 우리 양측을 갈라놓는 사안에 대해 설전을 벌이기보다는 탁월한 정치적 감각을 타고난 각하를 직접 만나(…)" 의견을 교환하자고 설득했고, 하노이 회담 이후 달라진 상황에 속내를 털어놨지만 그 역시 성공하지 못하게 됐다.
마지막 서한을 주고 받은 뒤인 2019년 10월5일 스웨덴 스톡홀름 외곽에서 북·미는 실무협상을 진행했지만 비핵화 협상을 위해 북미가 공식적으로 마주 앉은 마지막 자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