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의 혈액에서 바이러스 같은 감염병 원인을 깔끔하게 없애는 기술이 개발됐다. 다제내성균과 사람의 분변에 존재하는 다양한 박테리아 135종을 99% 이상 제거할 수 있는 기술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변이종들도 혈액에서 제거하는 게 가능하다.
유니스트(UNIST·울산과학기술원)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강주헌 교수팀은 자성나노입자 표면을 혈액세포막으로 감싼 ‘혈액세포막-자성나노입자’를 개발했다고 26일 밝혔다. 이 입자를 체외에서 순환하는 환자의 혈액에 반응시키면 세균 또는 바이러스 등 병원체를 붙잡은 뒤 자석으로 회수할 수 있다. 적혈구나 백혈구 표면에는 병원체를 붙잡아서 인체를 보호하는 특성이 있는데, 이를 이용해 ‘기능성 자성나노입자’를 만든 것이다.
이번에 개발한 ‘혈액세포막-자성나노입자를 이용한 혈액 정화 기술’을 패혈증(미생물이나 바이러스, 균류에 감염되면서 온몸에 염증반응이 나타나 주요 장기에 장애를 일으키는 증상으로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다)이나 중환자실 내 2차 세균 감염환자 치료에 병행하면 치료효과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중환자실 내 2차 항생제 내성세균 감염 사례가 늘고 있는 만큼, 코로나19 등으로 입원 치료 중인 중환자의 치료와 관리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패혈증과 사이토카인 폭풍 같은 과도한 면역반응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 여기에 대응할 항생제와 항바이러스제, 백신 등은 이미 개발됐지만, 슈퍼박테리아 출현이나 항생제 부작용 또 코로나19처럼 새로운 병원체까지 감당하기는 어렵다. 효과적·범용적 감염증 치료법이 시급한 이유다.
강주헌 교수팀은 개발한 치료법은 혈액세포막의 특성과 자성나노입자를 이용해 혈액에서 병원체를 제거하므로 효과적이고 범용적이다. 혈액세포막-자성나노입자가 체외에서 순환하는 환자의 혈액을 돌며 병원체를 포획하면 자석으로 꺼내서 몸 밖으로 내보내므로 누구든 어떤 병원체이든 적용할 수 있다. 연구팀은 이 방식으로 감염증의 주원인인 다제내성균과 바이러스 등이 자성나노입자 표면에 코팅된 적혈구와 백혈구의 세포막에서 유래한 물질에 포획되고, 혈액 내 옵소닌(물질이나 세포와 결합할 때 식세포 작용을 조장하는 세포 밖 단백질)과의 상호작용해 병원체 제거 효과가 증가하는 것을 정량적으로 밝혔다.
쥐를 이용한 실험에서는 기존 항생제로 치료가 어렵다고 알려진 메티실린 내성 황색포도알균과 카바페넴 내성 대장균의 치료 효과를 입증했다. 이들 세균에 감염된 쥐에 새로 개발한 혈액 정화 치료를 진행하자, 모두 생존에 성공했다. 또 치료 후 일주일이 지나자 면역 체계가 정상으로 회복됐다.
제1저자인 박성진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연구원은 “체내에 존재하는 혈액세포를 사용했고, 병원체를 포획한 자성나노입자는 혈액에서 완전히 제거된다”며 “치료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어 면역거부반응 등이 없이 치료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감염된 실험 쥐에 혈액 정화 치료를 연속적으로 진행하자 세균성 감염에 따라 폐나 신장에 침투했던 병원성 미생물의 농도도 줄어들었다. 공동 제1저자인 권세용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연구교수는 “연속적으로 혈액 정화 치료를 진행하면 병원성 감염에 의한 장기부전 치료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연구책임자인 강주헌 교수는 “우리 몸이 선천적으로 가진 면역대응 원리를 모사해 많은 종류의 감염원인 물질을 사전 진단 없이 일괄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기술”이라며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항생제 내성균 감염이나 새로운 감염병 유행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차세대 감염병 치료 기술로 개발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에는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의 이민석, 장봉환, 악셀 이구즈만-세딜로(Axel E. Guzman-Cedillo) 연구원이 참여했다. 연구결과는 와일리 발간 세계적 학술지 ‘스몰(Small)’ 9월 7일자 온라인판에 공개됐으며, 출판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