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전력 다소비 사업자 대상의 차등 요금제를 내놓으며 ‘전기요금 정상화’에 시동을 걸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공공기관 에너지 사용량을 10% 절감하고 건물 난방 온도는 기존 18도에서 17도로 낮추겠다”며 에너지 절약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가격 정상화 없이는 에너지 수요 감축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앞서 한전이 정부에 요청한 올 4분기 요금 인상분이 ㎾h당 50원가량이었다는 점에서 전기요금 인상이 내년부터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전은 30일 4분기 전기요금 조정안을 발표하며 “효율적 에너지 사용 유도 목적과 누적된 연료비 인상 요인을 반영해 모든 소비자의 전기요금을 1㎾h당 2원 50전 인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앞서 예고한 기준연료비 인상분(4원 90전)을 더할 경우 10월 전기요금은 전달 대비 ㎾h당 7원 40전 높아진다. 이에 따라 매달 307㎾h의 전력을 사용하는 4인 가구는 10월부터 월 전기요금 부담이 2270원 늘어난다.
한전은 10월부터 계약 전력이 300㎾가 넘는 ‘전력 다소비 사업자’에게 추가 전기요금을 징수할 방침이다.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앞서 “현재 대기업에 공급하는 전기의 원가 회수율이 70%가 채 안 돼 마치 정부(전력 공기업)가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것과 비슷한 구조”라며 산업용 전기요금을 추가 인상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한전은 ‘3300~6만 6000V’의 고압 전력 사용 기업에는 ㎾h당 11원 90전, ‘15만 4000~34만 5000V’의 초고압 전력 사용 기업에는 ㎾h당 16원 60전의 전기요금을 각각 추가 징수하기로 했다. 한전은 또 내년부터 대기업은 원가의 절반 이하에 공급되는 ‘농사용 전력’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전기요금 특례 제도 전반을 손볼 방침이다.
이 같은 전기요금 인상 폭은 내년께 더욱 가팔라질 가능성이 높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이날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여전히 에너지 위기감이 부족하고 요금의 가격 기능 마비로 에너지 다소비·저효율 구조가 고착돼 있는 상황”이라며 전기요금 추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에너지 무기화 등으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해 1970년대 ‘오일쇼크’에 준하는 비상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혀 업계에서는 향후 특단의 대책이 나올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현재 글로벌 연료비 상승 추이를 살펴보면 내년도 전기요금 급등은 불가피하다. 현행 전기요금은 1년에 한 번 결정되는 ‘기준연료비’와 분기별로 결정되는 ‘실적연료비’로 구성된다. 기준연료비는 최근 1년간의 액화천연가스(LNG)·석탄·석유 가격을 지표로 매해 연말 결정되며 현재와 같은 가격 추이라면 내년 기준연료비는 2배가량 뛸 가능성이 높다. 한전에 따르면 1MMBtu(열량 단위)당 LNG 가격은 지난해 평균 18.5달러에서 올 9월 35.1달러로 1년 새 2배가량 뛰었다. 석탄 가격도 같은 기간 동안 1톤당 138.4달러에서 353.5달러로 2.6배가량 상승했다. 1년 새 20% 이상 껑충 뛴 원·달러 환율까지 감안하면 실제 연료비 인상 부담은 2배 이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산업계에서는 이 같은 전기요금 인상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에너지 다소비 기업에 대한 차등 인상으로 고물가·고환율·고금리 여파로 한계 상황에 놓인 우리 기업들의 경영 활동 위축이 가속화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대한상공회의소도 “경제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서 전기요금 인상은 기업들에 매우 부담이 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한편 정부는 에너지 절약 정책 시행과 함께 국내 기업의 탄소 감축 유도를 위한 인프라 구축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다. 추 부총리는 이날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최근 글로벌 탄소 배출 규제 강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 확대 등에 따라 국내 기업들의 탄소 중립 대응이 시급하다”며 “탄소 발자국 산정에 필요한 기초 정보 데이터베이스(DB)를 확충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