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바이오

[동십자각] 가둬 놓은 ‘황금알’ 데이터

임지훈 바이오부 차장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을 겪으면서 확보한 방역·임상 데이터가 어마어마합니다. 여러 주에 데이터가 흩어져 있는 미국·유럽 등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단일한 중앙정부에 각종 정보가 오롯이 모입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 각국, 글로벌 제약사 등이 우리나라에 협조·지원을 요청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합니다.”

최근 만난 방역 관련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가 빅파마 코로나19 치료제의 효과 관련 데이터가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유가 궁금했다. 백번 양보해 다른 나라, 글로벌 제약사와는 이해관계가 상충돼 데이터를 공유할 수 없다고 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든 인류에게 건강을(health for all)’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WHO에 정보를 주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데이터를 왜 제공하지 않는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돌아온 답변은 간단했다. 다섯 손가락으로도 넉넉히 꼽을 수 있는 인력으로는 그 일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시스템을 운영·관리하는 데도 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데이터 공유 시스템을 추가로 만들고 운영할 여력이 없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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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건강보험공단의 공공의료 데이터도 갇혀 있기는 매한가지다. 이 데이터의 경우 공단 자료제공심의위원회가 제공을 결정하기만 하면 풀릴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갇혀 있다기보다는 가둬 놓았다고 볼 수도 있다. 데이터 유통이 막힌 것은 위원인 시민 단체와 의료계 관계자 등이 ‘정보 주체의 동의 없이 정보를 제공할 만큼 공익성이 크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보험사들은 양질의 헬스케어 서비스를 위해서는 공단 데이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시범 개통한 ‘건강정보 고속도로(마이헬스웨이 시스템)’는 기본적으로 데이터 개방을 지향하지만 아직 개방 대상은 제한적이다. 건강정보 고속도로는 분산된 개인의 의료 기록을 원하는 곳에 통합·표준화된 형태로 제공하는 데이터 중계 시스템이다. 지금은 환자 본인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의료진의 진료 PC 등으로 데이터를 맞춤형으로 받을 수 있도록 구축돼 있다. 정부는 앞으로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 기업 등으로도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할 예정이다. 다만 민간 기업으로의 데이터 유통을 위해서는 법 제정 또는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다.

흔히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되는 데이터는 개인 정보 유출 등의 문제 발생을 제어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활용할수록 그 가치가 커진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데이터를 잘 활용할 경우 개인의 편의 증진은 물론 산업 경쟁력 강화도 이뤄낼 수 있다. 정밀한 개인 맞춤형 헬스케어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것도 다름 아닌 축적된 데이터다.

데이터 유통을 활성화하는 방안은 의외로 간단하다. 정부나 공공기관에 데이터 공유 시스템을 구축하고 운영할 인력이 부족하다면 인력을 확충하면 된다. 보험사로의 데이터 제공이 공익성 제고에 부합하지 않다면 보험사가 일정액의 부담금을 건보 재정에 투입하는 방법 등으로 공익성을 높이는 방안 등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법적 근거가 없다면 법을 만들면 된다. 복지부는 현재 ‘디지털 헬스케어·보건의료 데이터 진흥 및 촉진법 제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임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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