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윤기자의 폰폰폰] 도 넘은 애플 '갑질'… ESG는 어디로


매년 아이폰 신제품 출시 시기마다 반복되는 일이 있습니다. 통신 3사는 예약판매 시점까지 모든 정보에 대해 입을 다뭅니다. 3사 모두 같은 시각에 배포하는 예약판매 보도자료는 수식어까지 천편일률적입니다. ‘역대 가장 진일보한’, ‘믿을 수 없는’. ‘놀라운 비디오 품질’ 등 과장된 번역투를 볼 때면 실소가 나옵니다. 평소와 달리 아이폰을 ‘iPhone’, 애플은 ‘Apple’로 표기하는 것도 어색합니다. 통신사가 아닌, 애플 보도자료를 보는 듯해서요. 국내 통신사가 애플 홍보를 대신 해 주고 있는 것이죠.

아이폰14 프로맥스. 사진제공=애플아이폰14 프로맥스. 사진제공=애플




통신사들은 침묵하지만 저 문장들은 애플이 통신사 보도자료를 ‘지도편달’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늘 으르렁거리는 통신 3사가 아이폰 출시 때만 교감을 나눠 표기부터 표현까지 담합(?)하는 것이겠죠.



아마 애플이 협력사 홍보물의 표현 하나 하나를 통제하고 있을 겁니다. 이는 동등한 파트너 사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물론 거래자 사이 완벽한 평등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디서나 갑을 관계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파트너의 광고·홍보 문장 하나하나를 입맛대로 맞추겠다는 건 갑질의 ‘선’을 넘은 게 아닐까요. 애플은 통신사의 거래처가 아닌 상전 노릇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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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통신 3사가 9월 30일 오전 8시까지 침묵을 유지하는 와중, 오픈마켓은 전날부터 아이폰14 판매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었습니다. 자급제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지만 그래도 휴대전화 구입 절대다수는 통신사를 통해 이뤄집니다. 이동통신 기기와 이동통신사는 불가분의 관계인데, 정작 통신사는 예약판매가 시작된 9월 30일 새벽 0시 시점까지 “우리 회사에서 예약을 받습니다”고 입도 뻥끗하지 못했습니다.

매년 아이폰 예약 구매를 위해 밤을 새워 클릭전쟁을 벌이는 ‘팬’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황당한 일입니다. 예약 전쟁은 끝났는데 뒤늦게 홍보자료가 배포되는 꼴이니까요. 사실 기자 입장에서나 소비자 입장에서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자사 제품을 파트너가 앞장 서 홍보해준다면 반길 일 같은데, 애플의 생각은 다른가봅니다. 워낙 브랜드 파워가 막강하니 협력보단 통제가 낫다는 판단일까요.

애플의 이런 ‘통제광’적 면모는 소비자 상대로도 드러납니다. 고압적인 AS 정책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국내 정보통신기기 AS 불만 접수 건수는 총 659건. 그 중 165건(25%)이 애플 관련이었습니다. 그 중 106건(64.2%)는 소비자와 애플이 합의에 이르지도 못했습니다.

최근에는 국내 인앱결제 수수료를 10% 과다징수했다는 의혹을 받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고 있기도 하죠. 과거에는 통신 3사에 광고비를 떠넘겼다가, 이를 조사하려는 공정위를 방해해 과태료를 부과받기도 했습니다. 소비자에게도, 파트너에게도, 정부기관에도 상생·협조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이런 애플은 그 어떤 기업보다도 ESG 경영에 적극적이라 합니다. ESG는 환경·사회·지배(방식)를 뜻하죠. 애플이 말하는 ESG가 독자 규격을 고집하는 ‘환경의식’, 소비자·정부를 거스르는 ‘사회의식’, 파트너를 ‘통치(Governance)’하려는 욕망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래봅니다.


윤민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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