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 스텝’은 못해도 ‘자이언트 스텝’이나 ‘빅스텝’ 정도는 될 줄 알았는데 ‘베이비스텝’에 그쳤습니다. 기준금리 이야기가 아니라 올 4분기 전기요금 인상폭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애초 시장에서는 정부가 올 4분기 실적연료비를 1kWh당 5~10원은 올릴 것이라 예상했지만 2.5원 인상하는데 그쳤습니다.
대신 정부는 전력 다소비 사업체 대상의 요금은 최고 11.7원가량 올렸습니다. 다만 매 정부마다 계속돼 온 지지율 잡기용 ‘전기요금 가격 왜곡’으로 현재 전기요금표는 ‘난수표’보다도 복잡합니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에도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는 공약을 지키기 위해 올 1월부터 반영해야 할 전년도 요금 인상분을 올 4월과 10월로 제멋대로 나눠 반영토록 조정했습니다. ‘시장경제 복원’을 강조한 현 정부마저 업종별·전력사용량별 차등요금제라는 초유의 카드를 꺼내들며 이전 정부와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전 직원들도 헷갈리는 전기요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정부는 내년도 대폭의 전기요금 인상을 고려중입니다. 물론 전기요금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물가잡기를 최우선 과제로 두고 있는 기획재정부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래도 현행 요금체제라면 내년 전기요금 인상분은 ‘울트라 스텝’을 넘어 ‘초(超)초초울트라 스텝’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민심만 쫓다보니.. 난수표 보다 복잡해진 전기료 공식
한전은 올 4분기 주택용 전기요금을 1kWh당 7.4원 인상한다고 지난달 30일 밝혔습니다. 애초 예고된 기준연료비 인상분(4.9원)에 최근 글로벌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실적연료비 인상분(2.5원)을 더한 금액입니다. 전기요금 인상을 설명하는데 생소한 용어가 너무 많네요. 여하튼 4인 가구는 10월부터 2270원의 전기료를 더 내야합니다.
이와 관련해 시장에서는 정부가 ‘전기요금 정상화’에 시동을 걸었다는 분석이 제기됩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전날 회의에서 “공공기관 에너지 사용량을 10% 절감하고 건물 난방온도는 기존 18도에서 17도로 낮추겠다”며 에너지 절약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가격 정상화 없이는 에너지 수요 감축이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한전이 앞서 정부에 요청한 올 4분기 요금 인상분이 kWh당 50원 가량이었다는 점에서 전기요금 인상이 내년부터 본격화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한전은 4분기 전기요금 조정안을 발표하며 “효율적 에너지 사용 유도 목적과 누적된 연료비 인상 요인을 반영해 모든 소비자의 전기요금을 1킬로와트시(kWh)당 2.5원 인상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한전은 10월부터 계약전력이 300kW가 넘는 ‘전력 다소비 사업자’에게 추가 전기요금을 징수하겠다는 방침입니다. 박일준 산업통상자원부 2차관은 앞서 “현재 대기업에 공급하는 전기의 원가 회수율이 70%가 채 안 돼 마치 정부(전력 공기업)가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것과 비슷한 구조”라며 산업용 전기요금을 추가 인상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습니다.
이에 따라 한전은 ‘3300볼트(V)~6만6000V’의 고압전력 사용 기업에게는 kWh당 11.9원의 요금을, ‘15만4000V~34만5000V’의 초고압전력 사용 기업에는 kWh당 16.6원의 전기요금을 각각 추가 징수하기로 했습니다. 한전은 이들 사업자를 자체 분류 기준으로 일반·산업용전력(을) 고압 A·고압BC 사업자라고 부릅니다. 전기요금 체계 설명이 고차함수 풀이 마냥 어렵습니다.
文정부처럼.. 尹정부도 기준연료비 인상 유보할까
이 같은 전기요금 인상폭은 내년께 더욱 가팔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창양 산업부 장관은 전날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여전히 에너지 위기감이 부족하고 요금의 가격 기능 마비로 에너지 다소비·저효율 구조가 고착돼있는 상황”이라며 전기요금 추가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에너지 무기화 등으로 에너지 가격이 폭등해 1970년대 ‘오일 쇼크’에 준하는 비상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고 밝혀 업계에서는 향후 특단의 대책이 나올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옵니다.
현재 글로벌 연료비 상승 추이를 살펴보면 내년도 전기요금 급등은 불가피합니다. 현행 전기요금은 1년에 한번 결정되는 ‘기준연료비’와 분기별로 결정되는 ‘실적연료비’로 구성됩니다. 기준연료비는 최근 1년간의 액화천연가스(LNG)·석탄·석유 가격을 지표로 매해 연말 결정되며 현재와 같은 가격 추이라면 내년 기준연료비는 2배가량 뛸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전에 따르면 1MMBtu(열량단위)당 LNG 가격은 지난해 평균 18.5달러에서 올 9월 35.1달러로 1년새 2배가량 뛰었습니다. 석탄 가격동안 같은 기간 1톤당 138.4달러에서 353.5달러로 2.6배 가량 상승했습니다. 1년새 20% 이상 껑충 뛴 원·달러 환율까지 감안하면 실제 연료비 인상 부담은 2배 이상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실제 이 같은 요금인상이 단행될 경우 ‘초초초 울트라 스텝’이라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내년에도 ‘초초초 울트라 스텝’은 커녕 ‘자이언트 스텝’이나 ‘빅스텝’ 정도만 단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정부는 2년전 연료비 연동제 도입을 공식화 할 당시 기준연료비는 ‘차기 전력량 요금 조정 필요시 갱신’이라는 조항을 넣었습니다. 한마디로 관련 조항을 활용할 경우 기준연료비를 매년 변경하지 않아도 됩니다.
기준 기준연료비의 정의는 ‘직전 1년 평균 연료비’입니다. 반면 요금 변경 여부는 ‘조정 필요시’라는 정부 입맛대로 적용가능한 ‘모순된 문구’를 넣어놓은 셈입니다. 이전 정부도 지난해 기준연료비 인상분을 관련 산식에 따라 올 1월부터 적용해야 했지만, 올 4월과 10월에 나눠 적용하는 꼼수를 부렸습니다. ‘시장 가격의 정상화’를 외치는 현 정부의 철학이 그저 말뿐인지, 아니면 실제 그러한 지 여부는 내년도 기준연료비 적용여부가 결정되는 올 연말께 알 수 있을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