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이재용, 손정의와 ARM 담판…中 견제 피할 '묘책' 나오나

◆'빅딜' 관전 포인트는

SK와 맞손 컨소시엄 구성 관심

"中기업 빼면 거부할것" 우려도

규제 피하려 지분 일부 인수하면

자칫 경영 주도권 못 잡을 수도

이재용 '회장 취임' 계기 될지 주목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부회장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이 2019년 회동해 만찬 장소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이재용(왼쪽) 삼성전자 부회장과 손정의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이 2019년 회동해 만찬 장소로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을 찾은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과 영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 암(ARM) 매각 관련 전격 담판에 나선다. 시장에서는 이 부회장이 인텔·퀄컴·SK하이닉스(000660)와 연합 전선을 구축할 가능성, 일부 지분 투자를 통해 경영에 참여할 가능성, 인수 논의 자체를 무산할 가능성 등 여러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ARM 인수를 확정할 경우 이는 곧 이 부회장의 회장 취임과 ‘뉴삼성’ 선포의 기점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손 회장은 1일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한국에 입국했다. 업계에서는 그가 약 일주일간 이 부회장 등 한국의 재계 인사들을 두루 만나 ARM 인수 의향을 타진할 것으로 내다봤다. 손 회장 입장에서는 소프트뱅크가 운용하는 비전펀드가 최근 기록적인 손실을 내고 있어 ARM을 서둘러 팔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비전펀드는 올 2분기에만 230억 달러(약 32조 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앞서 이 부회장은 지난달 21일 유럽·중남미 출장 귀국길에서 “손 회장이 서울에 올 것”이라며 만남 사실을 이례적으로 먼저 알렸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손 회장도 같은 날 “이번 방문에 대한 기대가 크다. 삼성과 ARM 간 전략적 협력에 관해 논의할 예정”이라며 이를 수긍했다.



SK(034730)와도 맞손 잡나=손 회장과 이 부회장 간 담판을 둘러싼 업계의 최대 관심사는 두 사람이 경쟁 당국들의 심사 장벽을 피하는 묘안을 과연 찾아내느냐 여부다. 재계에서는 각국의 반독점 규제 장벽을 감안할 때 삼성전자가 인수전에 단독으로 뛰어들 수는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ARM은 삼성전자·애플·퀄컴 등이 개발·판매하는 모바일 기기 칩 설계 부문의 90%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2020년에도 ARM을 미국 엔비디아에 매각하려다가 미국·영국·유럽 경쟁 당국의 심사 문턱을 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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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이 대신 인텔·퀄컴·SK하이닉스 등에 손을 내밀 수도 있다고 예측했다. 컨소시엄 규모가 클수록 반독점 지위에 대한 의심을 쉽게 씻을 수 있는 까닭이다. 일각에서는 손 회장이 이번 방한 기간 최태원 SK그룹 회장과도 회동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②중국 견제 피할 수 있나=컨소시엄을 구성해도 물론 걸림돌은 있다. 바로 중국 경쟁 당국의 견제다. 미중 갈등이 지금처럼 심화하는 상황에서 한국·미국·일본 기업 중심의 컨소시엄을 중국이 순순히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국내 4대 그룹의 한 최고경영자(CEO)는 “컨소시엄에 중국 기업을 끼워 넣지 않으면 중국에서 수긍하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 기업을 넣게 되면 반대로 미국이 거부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③지분 일부 인수로 경영 참여할 수 있나=각국의 규제를 가장 손쉽게 피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삼성전자가 ARM 지분 일부만 직접 인수하는 시나리오가 꼽힌다. 이 방안은 미국 나스닥 시장의 부진으로 ARM을 당장 상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손 회장이 급전을 확보하는 가장 빠른 길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부회장이 ARM 이사회에서 일부 지분만으로 경영 주도권을 쥘 수 있느냐다. ARM의 현재 가치가 50조~100조 원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자칫 수십조 원을 쓰고도 단순 지분 투자자로만 남을 위험이 있다는 얘기다. 이 경우 이 부회장이 제시한 ‘2030 시스템 반도체 1위 비전’에도 큰 도움이 안 될 수 있다. 이 부회장도 이를 의식한 듯 21일 “(손 회장이 ARM 인수와 관련해) 무슨 제안을 하실 것 같은데 잘 모르겠다”고 말을 아꼈다. ARM의 지분은 소프트뱅크와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75%, 25%씩 보유하고 있다.

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이사회를 통해 어설프게 경영에 참여하는 인수합병(M&A) 방식은 재계에서 보통 선호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④회장 취임 기점 되나=재계에서 주목하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ARM 인수가 이 부회장의 회장 취임과 ‘뉴삼성’ 선포의 신호탄이 될지 여부다. 시장에서는 이 부회장이 이르면 이달 그룹 컨트롤타워 조직 신설, 사업 구조 조정, 인적 쇄신 등 고(故)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에 준하는 혁신안을 꺼내 들 것으로 보고 있다. 그 시점은 특정 날짜보다는 M&A 등 큰 경영적 결단이 기준점이 될 수 있다는 추정이 나온다. 실제로 삼성의 전자·금융계열사 사장단 40여 명은 지난달 26일 경기 용인 인재개발원에서 2년여 만에 사장단 회의를 열었다. 2017년 미래전략실 해체 이전까지 유지하던 ‘수요 사장단 회의’를 연상하게 하는 모임이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찬에 직접 참석해 경영 혁신 발표가 임박했음을 암시했다.


윤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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