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인플레이션 등으로 중앙은행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가운데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이 발표된 10일 한국은행 내부에서는 ‘받을 사람이 받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버냉키 전 의장이 ‘대공황의 사나이’라는 별명답게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 양적완화 개념을 도입하고 신용 시장에 유동성을 과감하게 공급한다는 아이디어를 내면서 중앙은행의 새로운 역할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박양수 한은 경제연구원장은 “대공황 연구를 바탕으로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버냉키 전 의장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지켜본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최종 대부자 기능과 관련해 많은 변화를 겪었다. 최종 대부자 기능은 금융시장 불안이 발생했을 때 중앙은행이 발권력을 동원해 부족 자금을 대출해주는 고유 역할을 말한다. 한은 역시 버냉키 전 의장이 금융위기 당시 과감하게 추진했던 정책 사례를 지켜보고 2020년 코로나19 위기 당시 회사채 및 기업어음(CP) 매입기구(SPV) 등 여러 정책적 지원 방안을 내놓았다.
한은의 한 국장은 “버냉키 전 의장이 당시 과감한 정책을 펼치지 않아 미국이 금융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면 지금의 미국은 없다”며 “버냉키 전 의장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준 것은 현시점에 정확한 경제 상황 판단과 과감한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버냉키 전 의장과 함께 연준에서 근무했던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그를 “직원들과 편하게 어울렸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김 교수는 “미국 독립기념일에 불꽃놀이를 하면 버냉키 전 의장은 편한 옷을 입고 식당을 돌아다니면서 직원들과 인사할 정도로 소탈했다”며 “이번 노벨 경제학상 수상은 버냉키 전 의장의 금융위기 대응에 대한 현실 적합성이 증명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버냉키 전 의장이 연준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 프린스턴대에서 근무하면서 배출한 제자들은 국내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대표적인 버냉키 전 의장의 제자로는 박종규 금융연구원장, 윤정선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 등이 있다. 프린스턴대 출신인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 교수는 버냉키 전 의장에 대해 “학과장을 하면서 훌륭한 교수를 직접 영입하고 학내 행정에도 공헌을 많이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