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사회적 약자 돕는 것, 공공병원의 도리죠"

'한 병동 통째 노숙인에 할애' 이현석 서울시립서북병원장

결핵·코로나병동에 여유 생기자

49개 병상을 노숙인 위해 쓰기로

'국내 1호' 의료커뮤니케이션 박사

환자와 소통·신뢰 구축도 공들여

이현석 서울시립 서북병원 원장이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노숙자를 위한 병상 운영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이현석 서울시립 서북병원 원장이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노숙자를 위한 병상 운영 계획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호재 기자




“코로나19로 노숙인들이 느끼는 사회적 소외감이 더욱 커지고 있잖아요. ‘은평의마을’을 순회하고 돌아오는 길에 동관 17병동 전체를 노숙인 환자를 위한 병상으로 바꾸기로 마음먹었죠.”

이현석(63) 서울시립 서북병원 원장(흉부외과 전문의)은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이 공공병원의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1948년 시립순화병원으로 개원한 서북병원은 서울시가 직영하는 특수목적 공공의료기관이다. 결핵 환자와 치매 환자, 노인 환자, 말기 암 환자를 동관·서관·본관 등 별도의 3개 병동으로 나누어 진료해왔다. 코로나19 사태 직후인 2020년 2월부터 800일이 넘도록 감염병 전담 병원 역할을 수행하다 정상 진료를 재개한 지 4개월 남짓 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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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병원장은 노숙인 병상을 운영하게 된 배경과 관련해 “코로나19 환자를 받느라 비어 있던 병동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던 차에 은평의마을을 찾아간 일이 계기가 됐다”고 운을 뗐다. 은평의마을은 서울시가 설립해 운영 중인 남성 노숙자 생활 시설이다. 22년 동안 노숙자 진료에 헌신하며 ‘길 위의 의사’로 불리는 최영아 의사가 서북병원 진료협력센터장을 맡고 있어 출근한 지 며칠 되지 않아 함께 방문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병원장은 “당초 30분을 예상하고 갔는데 당뇨·고혈압 등 만성질환자부터 거동이 불편한 와상 환자까지 복합적 문제들을 안고 있는 노숙인들을 마주하니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며 “1200명 가까이 되는 노숙인들을 한 번씩 진료하고 나니 어느새 4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고 했다.

서북병원은 2012년부터 3년에 걸쳐 동관 내 결핵병동에 감염 차단을 위한 음압 유지 시설 설치를 마친 상태다. 최근 결핵 감염률이 감소하고 코로나19 확산세도 잦아들면서 병상 가동 여유가 생긴 터라 동관 4개 병상 중 1개는 노숙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구성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동관은 설립 때부터 결핵 환자를 위해 기획된 공간이라 별도의 출입구가 존재한다. 서관·본관과 분리돼 있어 노숙인 환자들이 입원하기에 더욱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후 내부 논의를 거쳐 동관 170개 병상 중 49개 병상을 노숙인 전용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 병원장은 “노숙인들 중에는 다른 이들의 시선을 불편하게 느끼는 분들도 많다”며 “우리 병원의 특성을 살리면서도 노숙인 환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라 생각해 즉각 실행에 옮겼다”고 말했다.

이 병원장은 올해 8월 임명을 받아 출근한 지 이제 막 두 달 남짓 돼간다.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이 워낙 컸던 터라 진료 정상화에 힘쓰기도 바빴을 텐데 이처럼 세심한 부분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이 병원장의 남다른 경력을 들여다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흉부외과 전문의인 그는 국내 1호 의료 커뮤니케이션 박사 학위 소지자다. 1986년 고려대 의대를 졸업하고 의학박사 학위를 땄지만 광운대에서 의료 커뮤니케이션을 다시 공부해 2011년 두 번째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기도 산본에 위치한 현대중앙의원 개원의로 시작해 최근까지 몸담았던 인천적십자병원까지 20년 넘게 임상의사로 생활하며 줄곧 환자와의 만남에 정성을 들였다. 첫 진료 때 환자와 충분한 대화를 나누며 서로 신뢰가 쌓이면 이후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이 병원장은 “최영아 선생님 같은 분이 계시기에 노숙인 병동을 만들어 진료에 집중할 수 있었다”며 “저는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얹은 것뿐”이라고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임기 내 노숙인 병동이 잘 뿌리내리고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로 병상이 가득 채워지는 모습을 보는 게 그의 소망이다.


안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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