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000270) 노조가 2년 만에 또다시 파업에 돌입한다. 퇴직자에게 제공하는 과도한 신차 구매 할인 혜택을 줄이겠다는 회사 측의 제안을 거부한 것인데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대응 등으로 자동차 업계가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노조의 이기주의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아 노조는 11일 쟁의대책위원회를 열고 부분 파업을 최종 결의했다. 13일 2시간 중간 파업과 결의대회를 진행하고 14일에는 4시간 퇴근 파업을 벌인다.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생산 특근 및 일반 특근도 전면 거부하기로 했다. 이날 파업 결의로 지난해 10년 만에 무파업 결정을 내린 노조는 1년 만에 다시 파업에 돌입하게 됐다.
노조가 파업 카드를 꺼낸 배경에는 ‘퇴직자 차량 구매 할인 제도’가 있다. 이 제도는 25년 이상 근무한 사원에게 2년에 한 번 차량 구매 시 연령 제한 없이 30% 할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회사 측은 이번 단체협상에서 이 제도의 수혜 연령을 만 75세로 제한하고 3년 주기로 25% 할인하는 안을 제시했다. 최근 노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위험성 증가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과도한 임직원 복지 혜택 제공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 여론 등을 감안한 조치다.
노사는 8월 30일 협상에서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지만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해당안이 부결되면서 상황이 꼬였다. 찬반투표에서 임금안에 대해서는 과반이 찬성했지만 퇴직자 차량 구매 할인 축소 등이 담긴 단협안은 41.9%의 찬성률로 부결됐다. 회사 측은 잠정 합의안 부결 이후 휴가비 인상 등 재직자의 복지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가로 제시했지만 노조가 이를 거부했다.
무파업 결정을 내렸지만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노조가 다시 파업에 나서기로 하면서 노사 간 긴장은 더욱 고조될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이 이번 파업의 주요 원인이 재직자가 아니라 퇴직자의 복지 사항이라는 점에서 고객과 대중들의 시선도 곱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8월 노사가 합의한 잠정안을 보면 임금 인상 등 노조의 요구가 상당 부분 반영됐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잠정 합의안에 따르면 노사는 △기본급 9만 8000원(호봉 승급분 포함) 인상 △경영 성과급 200%+400만 원 △생산·판매 목표 달성 격려금 100% △품질 브랜드 향상 특별 격려금 150만 원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전통시장 상품권 25만 원 △수당 인상을 위한 재원 마련 △무상주 49주 지급 등을 합의했다. 이 외에도 단협안으로 △경조 휴가 일수 조정 및 경조금 인상 △건강진단 범위 및 검사 종류 확대 △ 유아교육비 상향 등에 노사가 의견을 같이했다.
하지만 노조의 파업 결정으로 모든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 특히 글로벌 공급망 붕괴에 따른 반도체 부족과 미국의 IRA 시행 등에 대응하기 위해 회사가 전사적 노력을 벌이고 있는 시점에 파업이 결정돼 타격이 예상된다. 사내에서도 이번 파업의 쟁점인 퇴직자 복지 축소가 장기근속자만 해당되는 사안이어서 2030세대를 중심으로 불만이 터져 나오는 실정이다.
업계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임단협의 전체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일부 단협 조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노사가 합의한 단협안을 부결하고 파업을 결의한 것은 명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외 소비자들이 쏘렌토·카니발 등 간판 차종들의 납기가 길어져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는 상황에서 노조가 퇴직자 복지 이슈로 파업을 벌이는 것은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