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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일 떠난 이규성, 현대차에 마지막 신의는 지켰다 [시그널]

사임 후 현대차 美행사 찾아 정의선 회장과 만남

칼라일, 올 초 글로비스 지분 10% 인수

엘리엇과 전쟁에도 이규성 대표와 인연에 투자 수용

이 대표측 현대차에 굳건한 투자·신뢰 관계 밝힌 듯

칼라일이 2019년 5월 22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개최한 투자자 컨퍼런스에서 정의선 현대차 그룹 회장과 이규성 칼라일 최고경영자가 대담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칼라일이 2019년 5월 22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개최한 투자자 컨퍼런스에서 정의선 현대차 그룹 회장과 이규성 칼라일 최고경영자가 대담하고 있다. /사진제공=현대차그룹




세계 3대 사모펀드인 칼라일 그룹의 창업자들과 갈등 끝에 회사를 떠난 이규성 전 칼라일 최고경영자(CEO)가 사임 후에도 투자 기업인 현대자동차 그룹의 행사에 참여해 정의선 회장을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현대차(005380)그룹은 칼라일이 지배구조에 중요한 현대 글로비스의 정 회장 지분을 인수한 지 7개월 여 만에 이규성 CEO가 물러나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으나, 이 전 CEO가 현대차 행사장에서 정의선 회장과 굳건한 신뢰를 확인하며 분위기가 일부 호전된 것으로 알려졌다.



1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이규성 전 칼라일 CEO는 최근 미국에서 현대차 그룹이 북미 경영진을 위해 개최한 컨퍼런스에 패널로 참석했다. 당시는 정의선 회장이 미국 뉴욕 등을 방문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인한 현대차의 피해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시점이다. 이 전 CEO는 정 회장과 행사장에서 만나 현대차그룹에 대한 칼라일의 변함 없는 투자 의지와 신뢰 관계를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차측 행사는 올 해 상반기부터 기획해 당시부터 이규성 전 CEO가 참석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 전 CEO가 지난 8월 초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등 칼라일 창업자들과 갈등 끝에 사표를 던지자 현대차측은 이 전 CEO의 행사 참석은 물론 정 회장과의 만남을 추진하기 난처해졌다.

특히 사모펀드(PEF)와 경영권 분쟁까지 겪었던 현대차 그룹이 이례적으로 칼라일을 믿고 지배구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업의 오너 지분을 맡겼는데 ‘빅딜’을 이끈 핵심 인물이 별다른 설명도 없이 떠나자 현대차그룹 핵심 경영진은 적잖이 당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CEO가 칼라일 창업자들과 예기치 않은 갈등 속에 돌발적으로 사임한 때문에 현대차측에 칼라일이 충분한 사전 설명을 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현대차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현대차 그룹은 2018년 지배구조 개편을 통한 승계를 추진했다가 시장의 외면을 받았고, 2021년에는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과 분쟁을 겪어 사모펀드와는 거리를 둬 왔다” 면서 “글로벌 PEF인 칼라일과 손 잡은 것은 현대차 입장에선 대단한 결심이었지만 칼라일그룹은 그런 존중이나 배려가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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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일 그룹은 올 해 1월 현대 글로비스에 6000억 원을 투자해 정의선 회장(19.9%), 덴 노르스케 아메리카린제 AS(11%) 에 이어 지분 10%의 3대 주주가 됐다. 당시 칼라일은 이사 1인을 지명하고 정 회장이 지분을 매각할 때 함께 묶어 팔면서 경영권 프리미엄을 누리는 ‘태그얼롱(Tag-along)’ 조건도 챙겼다. 지분 10%를 사들이면서 태그얼롱 조건을 받은 것은 칼라일을 정 회장이 배려한 것인데 이 전 CEO와 친분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말까지 정 회장이 글로비스의 지분을 20% 밑으로 줄여야 하는 일감 몰아주기 규제 이슈가 있던 시점에서 오너가 지분을 칼라일에 매각한 것 역시 이 전 CEO에 대한 정 회장의 신뢰를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평가도 재계에서 나왔다.

칼라일그룹은 이 전 CEO 뿐 아니라 김종윤 아시아 인수합병(M&A) 부문 대표 겸 한국사무소 대표가 오랫동안 현대차 그룹과 신뢰 관계를 구축해 오긴 했다. 이 전 대표와 김 대표는 지난해 칼라일의 투자로 일감 몰아주기 이슈에서 정 회장이 벗어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글로비스를 글로벌 물류 전문 기업으로 현대모비스(012330) 만큼 키워 지배구조 재편을 돕겠다고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투자 직후인 지난 4월에는 칼라일 본사의 투자팀이 현대 글로비스를 찾기도 했다.

현대차 그룹은 2018년 현대모비스와 글로비스를 분할·합병하려다가 글로비스의 낮은 가치 때문에 주주들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당시 개인 투자자뿐 아니라 국민연금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도 현대차그룹이 시장과 불통으로 일관해 투자자들의 이해관계를 배척한다고 질타한 바 있다.

이후 미국의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현대차·현대모비스·기아차 지분을 1조원 넘게 사들이며 2~3%씩 지분을 확보해 현대차 그룹을 흔들었다. 엘리엇은 현대차측에 고배당과 사외이사 선임, 지주사 전환 등을 요구하며 분쟁을 벌이다 주주총회 표대결에서 패배한 후 물러났다. 이 같은 국면을 파고든 칼라일은 2019년 정의선 부회장이 칼라일 주최 컨퍼런스에 참석해 이규성 당시 CEO와 대담한 이후 돈독한 관계를 맺어왔고 2022년 1월 첫 투자를 이끌어냈다.

향후 칼라일과 현대차그룹간 관계에 대해서는 IB업계의 전망이 엇갈린다. 정 회장이 이 전 CEO와 개인적 믿음을 중시하며 투자를 이끈 만큼 이 대표가 없는 칼라일과 조만간 거래 관계를 정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선 제기된다. 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차 고위 경영진이 이 전 CEO의 전격적인 사임 과정에서 칼라일의 행태에 크게 실망감을 표했다” 면서 “칼라일그룹 역시 워낙 많은 대형 딜들을 다루다 보니 현대차에 특별 대접을 해줄 이유는 없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다만 현대차그룹과 관계를 이어온 김종윤 대표가 칼라일에 남아 있고, 현대차 역시 미국 경제계는 물론 정·관계 인맥이 탄탄한 칼라일그룹을 외면하기는 쉽잖아 투자 관계를 조기에 정리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임세원 기자·이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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