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건너와 8년 간의 무명생활을 끝내고 빛을 본 신인이 있다. 주인공은 패션 브랜드 아미(Ami). 하트 로고가 인상적인 아미는 12년에 밖에 안 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국 20~30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수입 패션 전성기를 이끌고 있다. 공식 수입사인 삼성물산 패션에 따르면 올 9월 말 기준 아미의 매출은 전년 동기간 대비 60% 증가했다. 글로벌로 보면 한국은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이은 5번째 시장이며 매출 규모는 미국과 맞먹을 정도다.
한국 소비자들이 그렇듯 아미의 한국 사랑도 남다르다. 지난달 서울 가로수길에 아시아 두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더니, 이달에는 파리 몽마르트 언덕의 사크레쾨르 대성당에 이어 광화문 광장에서 내년도 봄·여름(SS) 시즌 컬렉션을 선보이는 등 파격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그 배경에는 "한국의 고객들이 보내온 따뜻함을 결코 잊을 수 없다"는 아미의 창립자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인 알렉산드르 마티우시(42)가 있다.
마티우시 CD는 지난 11일 패션쇼가 열리기 전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한국에 상륙한 이후 8년간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의심하지 않았다. 빠르게 성장하기 보단 파트너들과의 신뢰를 쌓은 게 오히려 좋은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패션 브랜드의 성공은 한 순간이 아니라 철학과 품질이 수학공식처럼 맞아 떨어졌을 때 이뤄지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티우시가 한국을 찾은 건 이번이 세 번째다. 올해는 광화문 광장에서 진행된 서울패션위크에 참여하기 위해 방한했다.
그는 광화문 광장에 대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곳"이라며 "아미가 포용과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광화문 광장과 가치가 닮아있다"고 말했다.
아미는 2013년 삼성물산 패션과 손잡고 한국에 진출했다. 처음부터 성공가도를 달린 건 아니다. 지난해 코로나19로 '보복 소비'가 나타나기 전까지 아미는 사실상 8년간 무명생활을 보냈다. 이후 팬데믹을 계기로 해외여행 수요가 패션으로 몰렸고, '준비된 신인'이었던 아미가 자연스럽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는 게 패션 업계의 평가다.
마티우시 CD는 서른살인 2010년 아미를 창업하기 전 크리스챤 디올과 지방시 남성복을 거쳤다. 그는 글로벌 명품 브랜드에서 디자이너로 활약했던 경험이 창업의 밑거름이 됐다고 강조했다. 마티우시 CD는 "지방시와 디올에서의 시간은 스스로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 수 있게 해줬다"며 "언제 행복한 지를 알았던 서른살이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안정된 창업 기반에서 아미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디자이너에게 패션은 선택의 연속이다. 짧거나 긴 것, 부드럽거나 거친 것 등 매 시즌마다 선택의 순간을 마주한다. 마티우시 CD는 선택의 순간을 준비하기 위해 꿈에서도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그는 "자다 깨서도 꿈에 대한 내용을 녹음하곤 한다"며 "어디에서나 항상 주변의 것들로부터 영감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미를 매일을 위한, 일상을 위한 브랜드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아미는 한국에서 '신(新)명품'으로 불린다. 글로벌 명품 브랜드와 어깨를 견줄 만큼 사랑을 받고 있다는 의미다. 일등공신은 수입 디자이너 브랜드에 눈을 뜬 20~30대다. 마티우시 CD는 "어떻게 하면 스무살 고객도 아미를 좋아할 수 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함께 일하는 25~26세 나이의 팀원들에게서도 영감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고 했다. 그는 "아미는 아직 열 두 살 밖에 안된 아이"라며 "잘 관리하고 잘 다듬어 성장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내년 가을·겨울(FW) 시즌에는 일상복을 넘어 정제되고 시크한 느낌의 컬렉션을 선보일 예정이다.